"앞으로 화가 나도 '놈' 자를 붙이지 마세요."
담당 과장과 함께 민원인이 아파트를 짓겠다는 현장에 찾아갔다. 한 시간을 돌아보았는데 대부분이 산이나 계곡이었다. 한여름이고 가뭄이었는데도 곳곳에 샘이 솟아 흐르니 이런 곳에 아파트를 짓다가는 큰일 날 일,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을 돌아보니 도저히 허가를 내줄 수 없는 곳이라 도시계획위원회에 상정할 수 없습니다. 훗날 홍 아무개 부시장이 그곳에 아파트 허가를 내줬다는 말을 듣고 싶진 않습니다."
시장 실을 나온 지 얼마 안 돼 인질(?)처럼 잡혀 있던 국장도 내려왔다.
"저도 부시장님과 같은 생각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다행히 시장도 실무 의견대로 더 이상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단체장이든 나라의 통치자이든 참모들이나 국민들의 의견을 살필 줄 알아야 된다. 조선시대 정사(政事)를 논하던 신하들은 목숨을 내걸고 바른 말을 서슴없이 했다. 정조는 이런 신하들의 의견을 듣고 많은 일을 도모했다. 또한 백성들의 민원을 왕에게 직접 호소하는 '격쟁(擊錚)'을 통해 소통했다. 능 행 길에 징이나 꽹과리를 치면서 시선을 집중시킨 후 백성이 왕에게 민원을 호소했던 것이다. 이전에는 궁궐에서만 행해지던 것을 정조가 능행길에 백성들의 격쟁을 허용하여 거리에서 민원을 듣는 것을 관례화시킨 것이다. 정조의 능행길엔 으레 백성들이 격쟁을 통해 민원을 호소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으니 박수를 받은 게 당연한 일이었다.
국민가황 나훈아는 "세상이 왜 이렇게 힘들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왕이나 대통령을 한 사람도 본 적 없다." 고 일갈했다. 공직자와 내로라하는 지식인이 입을 다물고 있으니 그가 대신한 건지도 모른다. 지금은 공직자들이나 자칭 지식인이라고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바른 말하는 걸 보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공직자들이 자리를 보전하는데 급급해 바른 소리를 못하는 것이다. 자칭 지식인들도 바른 소릴 하면 진영논리에 휩싸여 화를 당할까 두려워 입을 다물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선관위 직원 2900명 전원이 조해주 상임위원의 연임 문제에 반대하고 나섰다. 사실상 대통령 뜻을 거역한 것으로 선관위 사상 초유의 일이고 결국 조 위원이 사퇴했다.
한 고을의 리더나 한 나라의 주인은 시민이고 국민이다. 그런데 선거 때는 찾아다니면 허리를 굽히고 표를 호소하고 당선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외면하는 리더가 많다. 실제로 시장, 군수에서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속 시원하게 국민들의 고충을 들어주는 걸 보질 못했다. 내가 비서실장으로 일할 때, 매주 금요일 오전 일정을 비워놓고 '도민과의 대화'를 했던 남경필 경기지사 같은 리더가 그리워지는 이유다. 진정성을 갖고 국민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리더가 늘어나면 좋겠다. 그리고 올해 치러지는 대선과 지방선거에선 국민들과 소통하는 참 리더가 선출되기를 소망해본다. 그렇지 못하면 다시 국민들이 답답하고 불행해질 것이다.
홍승표/ 수필가
홍승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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