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환 교수 |
비슷한 장면이 스포츠계에서도 연출되고 있다. 무대는 제24회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이다. 이번 대회에서 미국, 영국 등 주요 국가는 자국 정부 대표단을 올림픽 개·폐회식에 보내지 않겠다는 '외교적 보이콧'을 일찌감치 선언했다. 외교적 보이콧이란 선수단은 올림픽에 참가하지만 정부 대표단이나 외교 사절단은 파견하지 않는 조치다. 표면적인 이유는 신장 위구르 지역과 홍콩 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국 정부의 인권 탄압에 반대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한 국가들의 본심이 무엇이든 간에 확실한 것은 대회를 위해 4년간 땀 흘린 선수들의 노력이 주목받아야 하는 올림픽에서 정작 미·중 양강의 정치적 이슈들이 더 주목받고 있다는 것이다. 일명 '스포츠의 정치화'다. 실제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 빅데이터 분석시스템인 빅카인즈(BIG KINDS)를 통해 '베이징 올림픽'을 키워드로 하는 최근 3개월의 기사를 분석해보면 올림픽과 연관성이 가장 높은 키워드로 '외교적 보이콧'(313.08)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코로나19'(90.51), 'IOC'(41.3)등 대회와 관련된 주요 키워드와 비교해볼 때 외교적 보이콧이라는 이슈에 얼마나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스포츠의 정치화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특히 올림픽과 같은 국가대항전에서는 국제 정세에 따라 더 첨예하게 나타나기도 하는데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이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에게는 손기정 선수의 마라톤 금메달로 기억되는 베를린 올림픽이지만 스포츠史에서 베를린 올림픽은 히틀러의 나치 정권이 독일의 민족적 우수성을 과시하는 프로파간다의 창구로 스포츠를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되며, 냉전시대 개최된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과 1984년 LA올림픽에서는 미국과 당시 소련이 서로 상대방의 국가에서 진행된 올림픽을 보이콧하면서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른 바 있다.
물론 1970년대 미국과 중국이 탁구를 통한 이른바 '핑퐁외교'를 통해 적대적 관계하에서 대화의 물꼬를 튼 것처럼 스포츠가 정치에 긍정적으로 활용된 사례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올림픽 헌장에는 스포츠의 정치적 이용을 금지하는 것이 명확히 규정되어 있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 역시 이번 올림픽과 관련하여 "외교적 보이콧이 중국의 인권 문제를 지적하는 유용한 방법은 아니다"라며 올림픽을 정치화하는 것에 대한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올림픽은 국가 간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무대가 아니며 특히 스포츠를 바라보는 눈높이가 선진화된 우리 국민에게는 일부 국가에서 행하고 있는 보이콧 방법이 더욱 진부하게 느껴질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올림픽에서 외교적 보이콧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라는 우리 정부의 입장은 올림픽 헌장을 이행하는 바람직한 자세라 할 만하다.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인 피에르 쿠베르탱은 "올림픽에서 중요한 것은 승리가 아닌 참가하는 것 그 자체"라고 하며 어떤 메달을 따느냐보다 경기에 참가한 선수가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이 중요하며 그것이 올림픽 정신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지난 도쿄올림픽에서 김연경 선수를 비롯한 여자배구팀이 보여준 투지,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쇼트트랙 계주 경기에서 최민정 선수가 보여준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이 바로 그것이다.
이번 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단은 금메달 1~2개, 종합 15위를 목표로 하고 있다. 최근 몇 개 대회 중 가장 낮은 성적이지만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정해진 규칙에 따라 공정하게 경쟁하는 선수들의 모습에 우리 국민은 다시 한번 뜨겁게 박수를 쳐 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선수들의 건투를 빈다. /김세환 한밭대 산학융합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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