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식 세종고 교감 |
돌이켜보면 지난 30여 년의 교직 생활은 학생들과 하루의 공간을 어떻게 채우고 비워왔는가의 세월인 것 같다. 24시간 중 16시간을 학생들과 수업과 자율학습으로 보내기도 했고, 사감 선생님으로 근무할 때는 꼬박 숙식하며 2박 3일간을 함께 하기도 했다. 사제동행이라는 자부심으로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사십대 중반에 영어지문을 가르칠 때, 아프리카 가나의 남편보다도 내가 가사엔 독립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나는 아내와 자녀에게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으로 살고 있다.
학교는 혼란스럽다. 특히 고등학교는 더욱 복잡하다. 학생 중심의 진로선택과 과목선택을 내세우는 고교학점제 도입은 분명 장단점이 있다. 장점만을 부각시키고 어려운 점은 학교에서 슬기롭게 해결하라는 식의 포럼이나 전문가들의 결론은 답답한 학교현장에 고민을 가중시킨다. 수능성적을 중시하는 정시전형의 확대는 일반계 고교의 교육 방향에 더더욱 과제가 된다. 좌측 깜박이를 넣고 우측으로 가라는 식이어서는 안 된다. 수능 절대평가와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은 국가 차원에서 해결해줘야 한다. 학생의 과목선택을 최대한 존중하려면 강의실의 크기도 다양하고 적게는 5명부터 많게는 수백명의 다양한 교실이 있어야 한다. 학교 공간의 재구성이나 재건축이 필수다. 동시에 교사 수가 당연히 늘어나야 한다. 70명이 한교실에서 획일적 강의를 했던 붙박이 교육이 아니다. 물리적 공간 혁신만큼이나 소프트웨어적 측면의 다양한 전공의 선생님들이 더욱 증원되어야 한다. 학생 수가 줄어드니 교원증원을 하지 않는 것은 학교를 더 이상 세울 필요가 없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남아도는 폐교에 학생을 분산 배치하고 등교는 학부모가 알아서 시키고 순회교사제를 확대시키면 해결이 된다는 발상과 같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정상화라는 명분은 대입제도의 혁신이 전제되어야 하는 데 이 또한 국가 차원의 교육적 결단이 필요하다. 교육과정이 이상적 측면이라면 대학입시나 취업은 현실적 측면이다. 이상과 현실은 갈등이기도 하지만 공존의 길이며 인류가 교육을 희망으로 보는 명백한 이유이기도 하다.
학교는 무엇보다 희망의 공간이다. 학생들은 자신의 적성과 역량을 찾아 삶의 방향을 찾고, 교육자들은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희망을 주고 학부모들도 기대를 거는 교육활동의 장이다. 오후 햇살이 따뜻하다. 교정에 눈이 녹았다. 토요일임에도 아침에 눈길을 만들어 준 당직 아저씨, 쓰레기를 비운 선생님, 기숙사운영준비, 학교생활기록부 작성 및 점검으로 출근한 선생님이 있기에 학교는 희망의 공간이 된다. 설레는 마음으로 입춘의 햇살을 받으며 교문을 나선다. /문민식 세종고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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