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하는 일이 라디오를 켜는 일이다. 듣는 방송은 채널을 고정시켜놔서 주파수를 따로 안 맞추어도 된다. 별일이 없으면 하루 종일 듣고 있어도 지루하지가 않다. 클래식부터 팝송, 영화음악, 가요,,,,,,. 시간별로 장르가 다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해가 붉게 서산에 걸쳐있는 지금 노사연 가수의 '만남'이 흐른다. 이 노래만 듣고 있으면 보고 싶은 친구가 생각이 난다. 우리는 서로 다른 교회를 다녔지만 추수감사절이 돌아오면 아는 교회에서 특송 좀 해달라고 제의가 들어와 이 교회 저 교회를 바쁘게 다니던 그 시절이 아련히 떠오른다.
어느 날, 외동인 친구는 야외 전축을 샀다고 자기 집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얼마나 부러웠었는지 나도 갖고 싶었지만 집에 가서는 감히 사달라고는 부모님께 말씀을 못 드렸다. 그 대신 기회가 되면 그 친구 집으로 놀러 가서 주황색 야외 전축에 레코드판을 끼우고 빙글빙글 돌아가며 흘러나오는 노래를 실컷 듣고 부르다 왔다.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팝송을 배우던 그 시절, 'House of rising sun'(해 뜨는 집)을 어색한 영어 발음으로 우리는 집이 떠나갈 듯이 목청껏 불렀다. 그땐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았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세월이 훌쩍 지나갔어도 간혹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눈이 촉촉이 젖는다.
어느 다락방의 추억을 소환해 본다. 나보다 한 살이 많았던 언니였는데 옆집에 살아서 친하게 지냈다. 서로 무슨 고민이 그렇게 많았는지 시간을 잊은 채 끝도 없이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디스크자키의 목소리가 들리면 우리는 하던 말을 멈추고 쥐 죽은 듯이 심취했다. 까만 밤 작은 창으로 보이던 별들과 함께 방송을 타고 흐르는 진행자의 목소리에 반해 그 시간만 줄곧 기다리던 때가 그립다. 어쩌다 라디오에서 토미로의 'Dizzy' 노래가 나오면 그날의 다락방 추억이 나를 벙글거리게 한다.
"경희 언니는 이 다음에 뭐하고 싶어?"
"응, 나는 디스크자키가 되고 싶어. 사람들에게 좋은 음악을 선물하며 위로를 주고 싶어. 생각만 해도 멋지지 않니?"
"어쩜, 언니, 참 멋진 생각이다."
나는 그런 언니가 엄청 커 보이고 대단해 보였다.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추억은 늘 아쉽고 그립다.
나의 80년대는 조용필 가수의 노래를 따라 시간도 함께 가고 있었다. 나하고 가장 허물이 없던 친구가 6년의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던 날, 함께한 친구들과 대환영식을 해주었다. 그날 마지막으로 시간을 보낸 곳이 노래방이었다. 나는 그때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도 모르는데 친구는 아직도 그 노래를 기억하고 처음 내가 선사한 노래라고 좋아하고 있다.
"친구야, 처음에 나에게 선물이라고 불러준 노래가 뭔지 아니?"
"그 노래가 뭐지? 나는 가물가물……. 얘 그때가 언제인데 그걸 기억하니?"
"에그, 섭섭해라. '그 겨울의 찻집'이잖아. 조용필 가수가 부른 노래. 나도 그 노래가 좋아서 배웠어, 내가 불러줄까?"
언제부터인가 나를 만날 때면 내 손을 꼭 잡고 이 노래를 가만히 부른다. 그때를 회상하며 나도 듣고 있다가 따라 부른다.
친구들과 만났을 때 들었던 음악은 그때의 분위기와 풍경을 떠오르게 한다. 노래는 추억을 소환하기에 좋은 것 같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저녁, 라디오를 타고 백미현 가수의 '눈이 내리면'이 나온다. 지난날 눈을 맞으며 걸었던 명동 길 어느 골목에서 흐르던 노래가 하얗게 내게로 다가온다.
이현경 / 수필가
이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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