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공론] 노래의 추억을 소환하다

  • 오피니언
  • 여론광장

[문예공론] 노래의 추억을 소환하다

이현경 / 수필가

  • 승인 2022-02-06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나는 예나 지금이나 라디오를 즐겨 듣는다.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하는 일이 라디오를 켜는 일이다. 듣는 방송은 채널을 고정시켜놔서 주파수를 따로 안 맞추어도 된다. 별일이 없으면 하루 종일 듣고 있어도 지루하지가 않다. 클래식부터 팝송, 영화음악, 가요,,,,,,. 시간별로 장르가 다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해가 붉게 서산에 걸쳐있는 지금 노사연 가수의 '만남'이 흐른다. 이 노래만 듣고 있으면 보고 싶은 친구가 생각이 난다. 우리는 서로 다른 교회를 다녔지만 추수감사절이 돌아오면 아는 교회에서 특송 좀 해달라고 제의가 들어와 이 교회 저 교회를 바쁘게 다니던 그 시절이 아련히 떠오른다.

어느 날, 외동인 친구는 야외 전축을 샀다고 자기 집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얼마나 부러웠었는지 나도 갖고 싶었지만 집에 가서는 감히 사달라고는 부모님께 말씀을 못 드렸다. 그 대신 기회가 되면 그 친구 집으로 놀러 가서 주황색 야외 전축에 레코드판을 끼우고 빙글빙글 돌아가며 흘러나오는 노래를 실컷 듣고 부르다 왔다.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팝송을 배우던 그 시절, 'House of rising sun'(해 뜨는 집)을 어색한 영어 발음으로 우리는 집이 떠나갈 듯이 목청껏 불렀다. 그땐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았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세월이 훌쩍 지나갔어도 간혹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눈이 촉촉이 젖는다.

어느 다락방의 추억을 소환해 본다. 나보다 한 살이 많았던 언니였는데 옆집에 살아서 친하게 지냈다. 서로 무슨 고민이 그렇게 많았는지 시간을 잊은 채 끝도 없이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디스크자키의 목소리가 들리면 우리는 하던 말을 멈추고 쥐 죽은 듯이 심취했다. 까만 밤 작은 창으로 보이던 별들과 함께 방송을 타고 흐르는 진행자의 목소리에 반해 그 시간만 줄곧 기다리던 때가 그립다. 어쩌다 라디오에서 토미로의 'Dizzy' 노래가 나오면 그날의 다락방 추억이 나를 벙글거리게 한다.

"경희 언니는 이 다음에 뭐하고 싶어?"

"응, 나는 디스크자키가 되고 싶어. 사람들에게 좋은 음악을 선물하며 위로를 주고 싶어. 생각만 해도 멋지지 않니?"

"어쩜, 언니, 참 멋진 생각이다."

나는 그런 언니가 엄청 커 보이고 대단해 보였다.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추억은 늘 아쉽고 그립다.

나의 80년대는 조용필 가수의 노래를 따라 시간도 함께 가고 있었다. 나하고 가장 허물이 없던 친구가 6년의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던 날, 함께한 친구들과 대환영식을 해주었다. 그날 마지막으로 시간을 보낸 곳이 노래방이었다. 나는 그때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도 모르는데 친구는 아직도 그 노래를 기억하고 처음 내가 선사한 노래라고 좋아하고 있다.

"친구야, 처음에 나에게 선물이라고 불러준 노래가 뭔지 아니?"

"그 노래가 뭐지? 나는 가물가물……. 얘 그때가 언제인데 그걸 기억하니?"

"에그, 섭섭해라. '그 겨울의 찻집'이잖아. 조용필 가수가 부른 노래. 나도 그 노래가 좋아서 배웠어, 내가 불러줄까?"

언제부터인가 나를 만날 때면 내 손을 꼭 잡고 이 노래를 가만히 부른다. 그때를 회상하며 나도 듣고 있다가 따라 부른다.

친구들과 만났을 때 들었던 음악은 그때의 분위기와 풍경을 떠오르게 한다. 노래는 추억을 소환하기에 좋은 것 같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저녁, 라디오를 타고 백미현 가수의 '눈이 내리면'이 나온다. 지난날 눈을 맞으며 걸었던 명동 길 어느 골목에서 흐르던 노래가 하얗게 내게로 다가온다.

이현경 / 수필가

bfd165cea4364fc7d4e2c7faddfd0ccec94ee325
이현경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학대 마음 상처는 나았을까… 연명치료 아이 결국 무연고 장례
  2. 김정겸 충남대 총장 "구성원 협의통해 글로컬 방향 제시… 통합은 긴 호흡으로 준비"
  3. 원금보장·고수익에 현혹…대전서도 투자리딩 사기 피해 잇달아 '주의'
  4. [대전미술 아카이브] 1970년대 대전미술의 활동 '제22회 국전 대전 전시'
  5. 대통령실지역기자단, 홍철호 정무수석 ‘무례 발언’ 강력 비판
  1. 20년 새 달라진 교사들의 교직 인식… 스트레스 1위 '학생 위반행위, 학부모 항의·소란'
  2. [대전다문화] 헌혈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
  3. [사설] '출연연 정년 65세 연장법안' 처리돼야
  4. [대전다문화] 여러 나라의 전화 받을 때의 표현 알아보기
  5. [대전다문화] 달라서 좋아? 달라도 좋아!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시와 충남도가 행정구역 통합을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홍성현 충남도의회 의장은 21일 옛 충남도청사에서 대전시와 충남도를 통합한 '통합 지방자치단체'출범 추진을 위한 공동 선언문에 서명했다. 대전시와 충남도는 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 지방소멸 방지를 위해 충청권 행정구역 통합 추진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대를 갖고 뜻을 모아왔으며, 이번 공동 선언을 통해 통합 논의를 본격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공동 선언문을 통해 두 시·도는 통합 지방자치단체를 설치하기 위한 특별..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자영업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년퇴직을 앞두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는 소상공인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자영업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메뉴 등을 주제로 해야 성공한다는 법칙이 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두해 질리도록 파악하고 있어야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때문이다. 자영업은 포화상태인 레드오션으로 불린다. 그러나 위치와 입지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면 성공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에 중도일보는 자영업 시작의 첫 단추를 올바르게 끼울 수 있도록 대전의 주요 상권..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