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계획에서 비롯된다. 자신을 자신답게 만드는 일이다. 우리는 새로운 해가 되면, 좌우명을 새로 세우거나, 해이해진 마음을 다진다. 목표 설정, 구상 등을 하며, 마음을 바로 세운다. 결의를 다진다. 곧, 작심이다. 만사가 마음에서 비롯됨은 주지(周知)의 사실 아닌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요, 심즉리(心卽理)다.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도 익히 안다. 너무 쉬운 탓일까, 중요한 탓일까? 찰나(刹那)에 잊는다. 그런데, 그것을 알면서도 예사로 넘어간다.
따지고 보면, 세상일이란 것이 능력이 안 되어 못하는 경우는 드물다. 할 수 있는 일 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선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으랴.
작심삼일(作心三日)은 굳게 먹은 마음도 사흘이 넘으면 흐지부지 된다는 말이다. 삼일도 못 간다는 의미로 쓴다. 누구나 경험했을 법하다. 너무 어려운 목표 설정이 이유일 수 있고, 마음이 쉽게 바뀔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쉽게 잊기도 한다.
사회적 망각도 다르지 않다. 어떤 것이 중요한 가치인가 익히 안다. 그럼에도 한 발짝만 옮기면 잊는다. 역사도 미래도 없다. 아무것도 유념하지 않기 일쑤다. 게다가 정치는 그를 부추긴다. 본래 정치는 삶의 품격을 높이는 일 아닌가? 격조 잃은 정치에서 기대할 것이 무엇이랴,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시대불문이다. 고려시대 '고려공사삼일(高麗公事三日)'이라는 말이 있었다. 나라에서 하는 정책이나 법령도 삼일이면 바뀐다. 이것이 조선시대에는 '조선공사삼일(朝鮮公事三日)'로 바뀌었다. 국가도 유익한 일은 지속하지 못한다. 실상이 이렇다 보니, 귀찮은 것은 삼일만 기다리면 된다. 바뀔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신중론으로 바뀌기도 한다. 떠오르는 대로 하지 말고, 사흘 동안 신중히 생각하고 결정하라는 것이다. 그것도 작심삼일이다. 결정을 신중하게 해서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하자는 뜻이다.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다. 작심을 최대한 길게 가져가는 것이 좋은 선택임은 분명하다.
대부분이 지키지 못하다 보니, 해결하기 위한 갖가지 방법도 강구하고 권유한다. 목표를 실현가능하게 낮추거나 간소화 하라, 여기저기 소문내서 자승자박(自繩自縛)하라, 체크리스트 만들어 확인하고 재 결심을 다지라는 것이다. 누구나 그러하다 보니 작심삼일을 해결해 주는 앱 서비스도 등장했다. 운동, 독서 등 자기계발과 금연, 절주 등 나쁜 습관 고치기, 소비생활 및 투자를 도와 재테크 등을 도와주는 앱이다.
어떤 방법이든 마음에서 비롯된다. 습관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적어도 보름에서 한 달은 지속해야 한다. 설사 습관이 되었다 해도, 게으름을 막기가 쉽지 않다. 마음은 자신도 모르게 나태해진다. 원위치 되는 것은 그야말로 찰나이다.
그도 저도 안 되면,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자. 삼일이라도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삼일이 반복되면 일생이 된다. "소설을 쓰는 것은 밤에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과 같다. 당신은 차의 헤드라이트가 비춰주는 데까지만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런 식으로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 미국 작가 닥터로우(E. L. Doctorow, 1931 ~ )의 말이라 한다. 밤이 아니라도 멀리 보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나마 보이는 것조차 모두 알지 못한다. 그것만으로도 앞으로 나아가는데 문제가 없다. 삼일에 한 번씩 작심하는 방법만 강구하면 된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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