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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네트론 근처에서 주머니의 초콜릿이 녹는 것을 본 군수 기업 레이시온의 연구원은 마그네트론의 극초단파가 수분의 온도를 올린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특허를 출원했다.
미국의 페트리엇 미사일을 개발했던 군수 기업 레이시온의 돌연변이 특허가 우발적으로 전자레인지가 된 사연이다.
이제는 산불진압과 살충제 살포 등에 사용하던 드론도 시작은 군수 장비였다.
1893년 오스트리아군이 베네치아를 폭격한 것을 시작으로 역사에 등장한 드론은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재난구조와 국경감시, 산불 진압 등을 위해 투입되기 시작했다. 드론은 앞으로 택배 등의 물건 배달 등에도 사용될 것으로 예고되면서 그 사용처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군수 장비가 일상 가전이 되는 건 결국 과학이 우리 생활과 떼려야 뗄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학은 '미지의 영역'이자 '울타리 너머의 영역'으로 인식된다.
2021년 10월 대한민국 최초로 발사됐던 저궤도 실용 위성인 누리호의 핵심 부품 개발자인 민태기 에스엔에치 기술 연구소장의 '판타레이-혁명과 낭만의 유체 과학사'(민태기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 548쪽)는 이 같은 과학에 대한 기존의 통념과 편견을 반박한다.
책은 과학자들의 천재성이 아니라 그들이 살아간 정치 문화적 배경에 초점을 맞춘다.
책의 제목이자 저자 이야기의 핵심이기도 한 '판타레이'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모든 것은 흐른다"는 뜻으로 모든 사물이 고정불변이 아니라 마치 흐르는 유체와 같이 시간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는 의미다. 제목처럼 물리학의 가장 기본이 되는 '유체역학'에 대해 말하고 있다. 실제로 헤라클레이토스가 "판타레이"를 말한 후 철학자들과 다빈치 같은 예술가,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 같은 근대 자연 철학자 겸 수학자, 수많은 지성들이 소용돌이 흐름이라는 뜻을 가진 보텍스(vortex)를 중심에 놓고 자신의 사상과 연구를 전개했다.
저자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이 정립된 후 '유체'에 대한 연구가 과학사에서 사라지면서 과학 기술의 역사에는 설명되지 않는 구멍들이 생기게 됐다고 지적한다.
전자의 이동을 전기의 흐름으로 부르거나, 경제학자들의 화폐의 유동성 등이 모두 '유체'에 관련된 사실들이다.
'모든 것은 흐른다'는 뜻을 가진 '판타레이'처럼 제목에 걸맞은 유체 과학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생생하게, 세밀하게 살피고 있다.
저자는 "'과학자들에게 경주마와 같은 눈가리개를 씌우고 특정 분야 속에 가두려 하는 한국 사회'를 비판하기 위해, 그리고 '원래부터 과학자들은 결코 과학으로만 소통하지 않았고, 동시대의 음악, 미술, 문화적 소양을 끊임없이 흡입해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그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자신의 학문을 완성했음'을 알리기 위해책을 저술했다"고 말한다.
현대과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이제는 사라졌지만 열역에서부터 전자기학, 그리고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까지 수많은 과학 기술의 원천이 된 '보텍스'에 대한 이야기가 예술과 경제, 시대를 통해 서술하고 있어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접할 수 있다.
오희룡 기자 huily@
*'올랑올랑'은 가슴이 설레서 두근거린다는 뜻의 순 우리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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