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우리 할머니들'을 만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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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보기] '우리 할머니들'을 만나기 위해

손정아 여성인권지원상담소'느티나무' 소장

  • 승인 2022-02-03 16:24
  • 신문게재 2022-02-04 19면
  • 김성현 기자김성현 기자
손정아 느티나무 소장
손정아 소장
"이 떡국을 먹으면 올해 몇 살 된 거지?" 새해 떡국을 먹을 때마다 스스로 묻는다. 아직은 크게 불편한 신체적 증상 없고, 하루는 바쁘게 흘러가고, 머릿속은 해야 할 책임과 수행해야 하는 일거리들로 가득하지만 이제 60에 더 가까운 나이가 되었다. 나이를 잊고 살 때가 많지만 갱년기임을 알려주는 이런저런 몸의 신호를 느낄 때나, 하고 있는 활동의 역할과 권한들이 들고 나야 하는 시기를 생각할 때면 내 나이의 사회적 의미들을 의식하게 된다.

노인이 되어가는 당면한 사실에 대해 그동안 교만했었던 것 같다. 30대에 접한 페미니즘에 기대어 살아온 페미니스트로서, 최소한 나는 독립적이고 주도적인 존재로 삶의 지혜를 장착하고 멋있게 낡아 갈 것이라 자신했었다. 그러나 IT 기술 없이는 기초적인 세상살이조차도 만만치가 않을뿐더러 삶의 지혜를 논하기 전에 우선 독립적으로 기능하는 것조차 어렵지 않을까 하는 불안과 걱정들이 늘어가면서 초라해지는 마음은 부쩍 늘어만 간다. 나이 듦에서 오는 고립과 뒤처짐, 죽음, 가난과 질병에 대한 두려움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음을 갈수록 조금씩 더 많이 체감하고 있다.

늙어감에 대한 나의 감정은 두려움과 설렘이다. 사회적 약자성을 갖게 되는 노인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삶에 두려움을 느끼는 동시에 책임과 의무로부터 벗어나 온전한 나의 시간을 누릴 기대감에 부풀기도 하는 혼재된 상태 말이다. 중·노년의 독자들이라면 공감할거라 생각하면서 경험해보지 못한 노년의 모습이 문득 궁금해졌을 때 만난 의미 있는 작업을 소개하고자 한다.

1990년대부터 '엘리베이터 걸' 시리즈를 작업하여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이 어떻게 구성되고 소비되는지를 표현한 일본의 사진작가 야나기 미와는 1999년부터 '우리 할머니들'이라는 특별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25명의 40세 이하 여성들에게 50년 후의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고 상상한 내용에 따라 분장을 하고 무대를 연출하여 25명의 할머니 이미지를 촬영하는 작업이었다. 이 프로젝트를 기사에서 접하고 무척 흥미로웠다. 노년과는 아직 거리가 먼 20~30대 여성들이 불러오는 '할머니가 된 나'는 어떤 이미지일지 궁금해서 인터넷을 뒤져 찾아낸 사진들은 기존의 할머니 이미지(손자손녀와 함께 있는)로 상상할 수 없는 담대하고 의미심장한 상징을 담고 있는 신기하고 놀라운 사진들로 가득했다.



이 프로젝트를 분석한 이에 의하면 젊은 여성들이 보여주는 '우리 할머니들'은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대재앙이 휩쓸고 지나간 이후의 세계에서 살아남은 아이들과 함께 새로운 삶을 일구는 할머니, 이성애를 벗어나 거침없는 친밀성과 욕망을 드러내는 할머니, 외로움이 아닌 고독한 몰입으로 홀로 존재함을 표현하는 할머니들의 유형들이다. 야나기 미와 작가의 요청에 젊은 여성들은 자기만의 세상을 상상하여 펼치고, 자기만의 시간에서 자유를 누리며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할머니의 서사들을 만들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미지들이 한결같이 혈연이나 가족과는 무관하게 자기만의 세상에서 온전히 자유를 누리는 모습들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젊은 여성들이 자신의 미래 모습으로 할머니를 불러들이는 프로젝트의 제목을 '우리 할머니들'이라 칭한 것이었다. 이는 나이 들어간 이후의 삶이 세상과 다른 이들의 삶에 훨씬 적극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 할머니들'이라는 표현이('나의 할머니'나 '할머니가 된 나'가 아닌) 공동체로서의 미래비전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사진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더 자유롭고 확장된 할머니들의 세상을 꿈꿔도 좋을 것 같았다.

맛있게 나이 한 살을 더 먹은 2022년 새해 아침에 우리가 맞이하게 될 할머니를 상상한다.

나는 '우리 할머니들'과 함께 위험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튼튼하게 연결될 것이며, 살아온 삶의 지혜와 의미들을 사유하고 나눌 것이며, 죽음과 편안하게 친구삼다가 삶을 다하는 순간을 기쁘게 맞이하기를 원한다. 나이 들어가는 많은 사람은 노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성장하고 더 생생하게 '나 다운 삶의 시간'을 누리며 존엄하게 죽을 수 있기를 소망하고 있다. 여럿이 함께 희망하는 미래는 현실이 될 수 있으니 '우리 할머니들'을 꿈꾸는 우리가 꿈을 이룰 사람들이다. 화이팅!/손정아 여성인권지원상담소'느티나무'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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