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외의 명절로는 정월대보름, 한식(寒食), 초파일(初八日, 석가탄신일), 단오(端午), 유두(流頭), 백중(百中), 추석(秋夕), 동지(冬至)가 그 뒤를 잇는다.
'정월대보름'은 한 해의 첫 보름이자 보름달이 뜨는 날로 음력 1월 15일에 지내는 우리나라의 명절이다. 한자어로는 상원(上元)이라고 하는데 우리 세시풍속에서는 가장 중요한 날로 설날만큼 비중이 컸다.
'한식'은 동지(冬至) 후 105일째 되는 날이다.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의 하나였다. '단오'는 음력 5월 5일로, 단오떡을 해 먹으며 여자는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그네를 뛰며 남자는 씨름을 했다.
'유두'는 음력 6월 15일로 유두일에 동쪽에 흐르는 개울에서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하는 세시풍속이 있었다. '백중'은 음력 7월 15일에 해당하며 김매기가 끝난 후 여름철 휴한기에 휴식을 취하는 날이다.
농민들의 여름철 축제로 음식과 술을 나누어 먹으며 하루를 보내던 농민 명절을 뜻한다. '동지'는 24절기 중 22번째 절기로 음력 11월을 '동짓달'이라고도 한다. 하지(夏至)가 일 년 중에서 낮이 가장 길고 밤이 가장 짧은 데 비해 동지는 반대로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길다.
다소 장황하게 우리의 명절을 설명한 건 이유가 있다. 갈수록 이러한 명절을 까먹거나 심지어 아예 모르는 이도 많기 때문이다. 코로나 19의 장기화는 작년에 이어 올 설에도 가족 상봉을 막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정서적 지리멸렬(支離滅裂)까지 불러왔다. 설상가상 코로나 19 변이 바이러스인 '오미크론'까지 확산 일로에 있다. 상황이 이러니 설날 아니라 설날 할아버지라고 해도 귀향길은 선뜻 내키지 않는다.
자식과 손주 걱정에 부모님 또한 좌불안석이다. 마음과는 달리 "차라리 집에 오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2년 가까이 보지 못한 손자와 손녀가 왜 안 보고 싶겠는가!
어제, 지인과 술을 나누는데 설날과 차례(茶禮) 얘기가 돌았다. "홍 작가님은 설에 고향 가세요?" "아닙니다. 집에서 선친께 차례를 올리고 오후엔 가까운 처갓집에나 다녀오려고요. 기자님은?"
"저도 코로나 때문에 귀향을 포기했습니다." 대화는 더욱 진전되었다. 먼 훗날이 되면 우리의 자손들은 과연 설날과 추석이 되어도 조상님께 제사나 지낼까 하는 게 화두였다.
"글쎄요… 아마 인터넷으로 제사를 지내는 것만으로도 작고하신 조상님은 감지덕지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했다. 여하간 설날은 첫해의 시작이다.
이날 설밥이 내리면 좋겠다. '설밥'은 설날에 오는 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옛사람들은 정월 초하루에 눈이 내리면 풍년이 들 징조라 하여 길조(吉兆)로 여겼다. 이를 한자말로 '서설(瑞雪)'이라 부르기도 한다.
"처갓집 세배는 앵두꽃을 꺾어 가지고 간다"는 속담이 있다. 세배는 정초에 하는 것이 상례다. 따라서 앵두꽃이 피는 봄이 되어서야 처가에 세배하러 간다면 뭔가 꿍꿍이가 느껴진다.
이는 사실 그런 뜻이 아니라 그만큼 여유를 갖고 천천히 간다는 의미를 과장한 것이다. 외국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국민도 코로나로 인해 몸과 마음마저 모두 지쳤다.
그렇다고 설날에 차례와 떡국이 빠질 순 없다. 비록 세월은 우릴 속일지언정 상을 물리고 나선 올해의 계획을 짜보자. 그래서 올 연말엔 다들 북받자(곡식 따위를 말로 수북이 되어 받아들이는 일)의 만석꾼이 될 꿈이라도 크게 꿔보는 건 어떨까.
홍경석 / 작가·'초경서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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