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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밥 지을 때 쌀을 씻기만 한다. 전에는 돌 가리기가 필수였다. 돌 가리는 도구가 조리다. 밥 지으려면 먼저 조리질을 해야 한다. 수확에서 방아 찧을 때까지 수없이 돌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적당히 물에 잠긴 쌀을 한 방향으로 휘휘 돌리면, 상대적으로 가벼운 쌀알이 떠오르면서 조리에 담긴다. 돌리는 높낮이를 잘 조절하는 것이 관건이다. 깊이 숙여 바닥에 있는 쌀을 떠올리면 돌이 가려지지 않는다. 정성들여 인다고 해도 돌이 모두 가려질리 없다. 반복하다보면 쌀이 있던 그릇에 돌만 남는다. 따라서 주방 필수품이었다.
조리는 주로 싸리나무, 버들가지, 대나무를 가늘게 쪼갠 대오리, 산죽 또는 신우대라고도 부르는 조릿대 등으로 엮는다. 작은 삼태기 모양으로 엮어나가다, 남은 가닥으로 길게 자루를 만든다. 전체적으로 국자 모양이 된다. 오래 전부터 사용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근래에는 철사로 엮어 만들거나 구멍 뚫린 스텐, 합성수지 제품이 보인다. 쌀 일기보다 퍽 다양한 용도로 쓰인다.
돌을 버리고 쌀만 취하는 것이 행복 추구와 같다고 생각 했을까? 복을 불러온다, 복 받으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복조리라 부른다. 설 전날이나 새벽에 사서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둔다. 붉은 실로 묶기도 하고, 동전이나 엿을 담아 걸기도 한다. 한 해 동안 사용할 조리를 사서 벽에 걸어두고 하나씩 사용하기도 한다. 1년 동안 복을 짓는 것이다.
예전엔 마을 청소년이 조리를 팔았다. 섣달 그믐날 밤부터 설날 새벽이라는 제한 된 시간 때문이었으리라. 밤새도록 골목을 누비며 큰소리로 호객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점차 전문 장사치로 바뀌었고, 지금은 거의 사라진 풍습이다. 그나마 실용성보다 관상용으로 걸어두고, 복 짓는 전통적 의미만 되새긴다.
설날 복조리와 함께 사던 것 중에 갈퀴가 있다. 남부지역에 주로 있었던 풍습이라 하는 데, 갈퀴 역시 시골에서는 생활필수품이다. 화석연료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던 시절, 땔감 마련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땔감 중 하나가 산에 흩어진 낙엽이나 삭정이, 나무 잔가지였다. 그를 긁어모으는데 갈퀴보다 좋은 것은 없었던 기억이다. 갈퀴는 무엇인가 긁어모으는 도구다. 복을 긁어모으라는 뜻이었을 게다.
이때 사는 물건 값은 깎지 않고, 무르지도 않는다. 복을 깎거나 무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복을 깎을 사람이 어디 있으랴?
우리말 '조리'는 의미가 다양하다. 쌀을 이는 것(?籬)뿐이 아니다. 건강이 회복되도록 몸을 보살피는 것도 조리(調理)다. 음식을 만드는 것도 조리(調理)고, 말이나 일 따위 앞뒤가 맞거나 체계가 서는 것도 조리(條理)라 한다. 조쪽 방향(저쪽의 작은말), 조금 떨어진 거리를 표현 할 때도 사용한다. 모두 좋은 의미를 갖는다.
복은 곧 행복이다.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 복은 복이라 할 수 없다. 여기 행복에 관련된 말이 있다. 좋음, 즐거움, 기쁨, 웃음, 재미, 만족, 사랑(인간애, 우정, 관용, 봉사 등), 감사, 보람, 칭찬, 가치감, 평온감, 소속감, 안정감, 의욕, 희망 등이다. 혼동하기 쉬운 것도 있다. 지위, 부, 인기(명예), 외모, 쾌락 등이다. 얼핏 행복으로 보이지만, 함정을 가지고 있어 행복이라 보기 어렵다.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모두 내게서 비롯되는 것이다.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다. 상대적 행복과 절대적 행복으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마음이 행복의 원천임은 다르지 않다. 도인은 그것마저 떨구려 마음수련을 한다.
복조리, 설 풍속 중 사라져가는 하나이다. 예나 지금이나 보는 것으로 복이 지어지지는 않을 것이요, 부른다고 오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으로 다지는 것은 다르다.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짓는 것이다. 비싸지도 않고 품절도 없어 마음 하나면 족하다. 임인년 새해, 행복으로 꾸미자.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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