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쿵 명대사 찾기-9] '참 여성성으로의 여정', 노매드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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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쿵 명대사 찾기-9] '참 여성성으로의 여정', 노매드랜드

심상협 / 문학평론가

  • 승인 2022-01-28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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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매드랜드' 포스터
설 연휴가 다가온다. 아직 힘들고 고통스러운 여성들의 설 명절. 홀로인 이들은 혼자 영화보는 이도 있을 것이다. 외롭고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운 한 여성의 사실적인 이야기를 담은 '노매드랜드(Nomadland, 2020년). 2021년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 여우주연상, 감독상을 휩쓴 다큐 형식의 영화이고, 국내에선 2021년 4월 개봉했다.

영화 '노매드랜드'는 두 번 보았다. 처음엔 그저 서사에 빠져들어 가능한 여성 주인공 펀(프란시스 맥도맨드 분)의 자아에 동일시하면서 보았고, 두번째는 영상과 대사를 텍스트화시키면서 조금은 거리를 두고 보았다. 첫 번째 감상이 '빠져들어 보기'였다면 두 번째는 '따져보며 보기'였던 셈이다.

영화를 보며 문득 '여성성(Femininity)'이 떠올랐다. 남편과 평생 살던 추억조차 결별하고 떠난 첫 여정은 어두워 오는 황량한 바위 벌판에서 '소변 보기'. 머나먼 여정을 떠나는 여성 홈리스가 적응하려는 모습처럼 보이지만 여성으로서 자연을 향한 본능의 몸짓이 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과 만남이 이어지지만 '여성성(Femininity)의 시선'으로 보면 두 사람과의 만남과 대사에 주목한다. 두 장면 모두 세익스피어의 시가 인용된다.



첫째 장면은 마트에서 임시교사 시절 제자인 소녀와의 만남과 대화. 배운 것 중 기억나는 것이 있느냐는 펀의 질문에 소녀는 낭랑한 목소리로 낭송한다.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하루하루가 슬금슬금 이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기어들어 온다.

우리의 모든 어제라는 날들은

어리석은 자들이 티끌로 돌아가는 죽음의 길을 비춰왔구나.

꺼져라, 꺼져. 이 키 작은 촛불이여."

- 세익스피어, 『맥배스』 5막 5장(Act 5, Scene 5) 맥배스의 독백.

마녀와 귀신의 예언을 따르거나 또는 경계하며 아내와 힘을 모아 왕 위에 오른 맥배스, 그러나 악령에 시달리던 아내가 죽음을 선택하자 맥배스의 탄식이다.

맥배스의 비운의 시작은 마녀들의 3가지 예언에서부터이다. 그중 마지막 예언이 "여인이 낳은 어떤 인간도 그대를 해칠 힘이 없으니 두려움 없이 용감히 싸우라"는 지옥 마녀들의 예언이었다. 맥배스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맥더프는 여인이 낳은 아이가 아니라 갈라진 어미의 태에서 꺼내진 아이였다.

또 하나 지옥 마녀들의 예언은 "음모를 겁낼 필요 없다. 버남의 숲이 궁전 앞으로 오기 전까지는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였다. 죽기 직전 전령은 맥배스에게 숲이 움직이며 다가오고 있다는 말을 전한다. 결국 맥배스는 버남의 숲에 몸을 가리고 숨어 공격해온 맥더프에게 죽음을 당한다. 숲은 마녀들의 예언으로 상징되는 운명을 벗어난 자연, 또는 초월의 섭리 아닌가?

펀에게 남편 보의 죽음은 상실이자 탄생이다. 자본주의와 노동과 가부장적인 마을과 가정이라는 생의 죽음인 동시에 이제 독립된 자아, '여성성(Femininity)'으로서의 자아의 탄생이자 첫걸음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이제 펀은 그동안 '가정'이라는 제도와 관습 안에서 살아온 자본주의와 가부장의 틀에서 운명처럼 다가온 '숲' 즉, 자연의 땅 '노매드랜드'로 첫걸음을 내딛는다.

그렇다고 남편을 잊는 것이 아니다. "기억하는 한 살아있다"는 대사처럼 이제 독립된 자아로서의 추억 속 그와 반려하며 동행한다. 그와의 결혼생활은 폐업과 실직, 남편의 죽음과 하우스리스(Houseless)로 이어지고 그 지평이 바로 남편의 추억을 간직한 채 홀로 걸어가야 하는 '노매드랜드' 아닌가?

남편과의 동행은 여자 친구에게 어떻게 편지를 써야 할지 모르는 청년에게 낭송해주는 또 한 편 세익스피어의 시로 이어진다.

"그대를 여름날에 비유할 수 있을까?

그대는 여름날보다 아름답고 부드럽다.

거친 바람은 5월의 귀여운 봉오리를 흔들고,

여름의 생명은 너무나도 짧다.

하늘의 눈은 가끔 너무 뜨겁게 내리쬐고,

황금빛 피부도 가끔 희미해지곤 한다.

어떠한 미인도 언젠가는 그 아름다움이 쇠하리니,

우연히 또는 자연의 변화하는 순리에 따라 아름다움은 그 빛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대의 영원한 여름은 바래지 않고

그대의 아름다움을 잃는 일 또한 없으며

죽음도 그대가 죽음의 그늘 속을 배회한다고 자랑할 수 없으리라.

이 불멸의 노래 속에서 그대가 자라난다면,

인류가 살아 숨 쉬는 한, 그 눈으로 볼 수 있는 한,

이 시는 오래도록 살아남아 그대에게 생명을 주리니."

- 셰익스피어 소네트(소곡, 14행시) 18번

펀이 남편의 목소리를 빌어 자신에게 불러주는 사랑과 연민의 소네트로 들려온다. 아니 하늘에서 내려다 보는 전지자의 목소리로도 들려온다.

'노매드랜드'에서 '여성성(Femininity)'의 상징적인 장면으로 계곡의 물 속으로 몸을 누이고 떠오르는 펀의 모습을 꼽고 싶다. 바위 벌판에서 소변을 보는 여성 펀, 그저 한 인간으로서 아름답기만 한 계곡 속 펀의 알몸.

개인적 독서 경험으론 마흔 초반에 깊이 빠져 읽었던 자크 아탈리의 '호모 노마드'의 선입견에서 벗어나 서른 후반에 깊이 읽었던 클라리사 에스테스의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을 떠올리게 하는 펀의 이야기, '노매드랜드'. 설 연휴 가사노동에 힘들 여성들에게 잠시 홀로되어 보기를 권하고 싶은 영화다.

심상협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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