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윤수 교수. |
떨리지만 힘찬 목소리와 함께 메스를 쥐고 환자 배를 가르기 시작한다. 복벽 층층이 차례로 열리며 배 속 소장, 대장이 보이기 시작한다. 염증이 심한 충수돌기를 찾아 제거하는 충수돌기절제수술의 시작이다. 외과 의사가 되어 첫 집도하는 수술, 주임교수님께서 나의 건너편에서 제1 보조의사 역할을 해주신다. 시작할 때 내었던 힘찬 목소리는 어디 갔는지 모르게 수술은 점점 진행이 더뎌졌다. 보조의사로서 수없이 많이 보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집도의 자리에서 하는 수술과정이 너무 어렵고 긴장의 연속이었다. 마취 후 개복, 충수돌기로 가는 혈관 결찰, 충수돌기 절제, 다시 개복되어 있는 복벽을 봉합하는 과정으로 충수돌기절제술은 마무리된다. 익숙하고 유능한 외과 의사가 하면 몇십 분에 끝나는 수술이 첫 집도의 역할을 하는 전공의 1년차 손에 한 시간 가까이 걸려 가까스로 끝났다. 앞에서 묵묵히 제1 보조의사를 해주시며 마지막까지 후배 의사를 도와주시고 가르쳐주셨던 교수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최근 복강경으로 충수돌기 절제술이 대부분 이루어지지만, 내가 첫 집도하던 시기에는 개복수술이 일반적인 방법이었다.
나는 지금 메스를 들고 환자 복부 어디라도 자신 있게 치료의 손길을 내미는 외과 의사가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첫 집도의 떨림과 긴장의 연속은 잊지 못하고 있다. 무사히 마무리된 충수돌기염 환자 회진은 그날부터 퇴원까지 하루에도 대여섯 번 내가 담당했다.
새로 근무를 시작한 인턴선생님이 채혈할 주사기를 들고 환자 옆에서 10여 분간 서성이고 있다. 인턴선생님은 동맥혈 채혈을 해야 하는데, 환자 좌우 손목을 번갈아 가며 동맥이 정상적으로 뛰는지 만지기만 하고 정작 바늘을 환자 팔에 꽂기는 주저하고 있다. 지난해 3월 1일 중환자실에서 있던 일이었다. 마침 중환자실에 있던 나는 인턴선생님에게 다가갔다. 내가 첫 집도했던 순간, 나도 인턴이 되어 처음으로 환자에게 채혈, 시술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30분간 환자 손과 동시에 인턴선생님 손을 잡아주며 이 채혈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시범을 보여준 끝에 인턴선생님은 동맥혈 채혈에 성공했다. 주사기 바늘에 환자의 빨간 혈액이 맺히는 순간, 동시에 인턴선생님 얼굴에 기쁜 미소가 보였다. 그 순간 내 마음은 16년 전 내가 첫 충수돌기절제술의 마지막 봉합을 하는 순간 앞에서 보조의사를 해주시던 주임교수님의 마음과 같았다. 그 후로 인턴선생님은 병원 근무 중 나를 만나면 이제 동맥혈 채혈은 자신 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 인턴선생님은 인턴 수련 과정을 잘 마무리했고, 이제 곧 본인이 원하는 전공과목으로 4년 수련 생활을 시작한다.
처음 시작이 중요하다. 사람 몸과 생사를 다루는 의업은 특히 도제식 교육 안에서 현명한 멘토, 스승을 만나야 하고 그것을 슬기롭게 받아들이는 자세도 중요하다. 6년간 수업과 실습을 통해 배우고, 이어서 수련의 신분으로 4~5년을 더 배워야지 환자 몸에 메스를 가져갈 수 있는 외과의사가 된다. 몇 년 후에는 내 면허번호 앞 선배 의사들보다 나의 뒤 후배 의사들이 많아지게 된다. 현재 이 자리에 외과의사인 나를 있게 해준 것은 나의 첫 집도를 보조해준 주임교수님을 비롯해 수많은 선배 의사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이제 나도 나의 뒤에 많은 후배 의사들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새해가 시작됐고 곧 새 학기 시작인 3월이다. 새로운 학교, 새로운 학년을 맞이하는 학생들은 현명한 선생님을 만나야 한다. 2022년 3월은 우리나라 새로운 5년을 책임질 전 국민의 멘토인 대통령을 새롭게 뽑는 선거가 있다. 무엇이든지 시작, 처음이 중요하다. 민초들은 좀 더 나아질, 새로운 5년을 위해 국민들을 위할 수 있는 대통령을 만나야 한다. 초심, 첫 시작과 배움이 중요한 만큼 올 한해도 새롭게 시작하는 모든 사람들이 훌륭하고 현명한 멘토를 만나기를 바란다./문윤수 대전을지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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