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석 천일엔지니어링 사장이 중도일보 스튜디오에서 윷놀이 시연을 하고있다. 사진=이성희 기자 |
30여 년간 공직에 몸담으며 토목설계와 감리업무 수행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엔지니어링 회사를 이끄는 김홍석 공학박사는 자타공인 윷놀이 전도사다. 어린 시절 마을에서 자연스럽게 접했던 윷에 대한 기억이 퇴직 후 동양철학을 공부하면서 깊어졌다는 김 씨는 2019년 자신이 쓴 책 '신나는 윷판 인생'을 통해 도개걸윷모의 의미를 바로 알고, 우리 민족의 뿌리 이념과 우주의 원리가 녹아있는 윷놀이의 대중화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윷을 통해 제2의 인생을 사는 김홍석 공학박사를 만나 그의 인생철학과 윷놀이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
▲윷놀이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있다면.
어린시절 고향 어르신들이 마을 잔치를 열 때마다 윷놀이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눈과 몸으로 윷의 원리를 체득하게 됐다. 1977년 군 제대 이후 서울시 공무원 생활을 하며 30년 이상 토목설계와 건설, 유지관리에 종사했다. 서울시 지하철 2호선과 5호선, 7호선 개통공사에 직접 관여하며 관리·감독하는 과정에서 안전사고가 잇달아 발생했고, 그로인해 억울하고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연일 끊이지 않았다.
5호선 건설 당시인 1990년대 사무관 시절, 서울시 강동 한강 구간을 담당했는데, 빠듯한 일정으로 제대로 된 도면도 없이 말뚝을 박고, 밀어붙이기식 공사를 진행해야만 했다. 공사구간의 80% 이상을 지하 매설을 해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 이어지다 보니 팀원들 간 견해차로 갈등이 불거졌다. 그러던 중 직장 상사가 부친상을 당해 전북 부안으로 문상을 가게 됐는데, 당시 90세에 유명을 달리하면 호상이라 여기던 때라 같이 간 20여 명의 직원과 윷놀이를 하며 상갓집 분위기를 이끌었다. 내가 속한 팀이 내내 점수를 내지 못하면서 놀이 막판까지 왔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모 5개에 윷 4개, 걸 2개를 내면서 한 판에 4개의 말을 전부 빼내면서 역전승을 거뒀다. '신이 나게' 윷놀이했던 일이 전환점이 돼 직원들 간 마찰도 줄었고, 공사에 들어가기 전 안전기원제를 지내면서 실제 사고 횟수도 감소하는 등 윷놀이의 순기능을 체득했다.
김홍석 윷놀이 장인이 윷판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이성희 기자 |
30년 남짓한 서울시 공무원 생활을 뒤로하고 2003년 52세 때 명예퇴직을 했다. 1987년 조직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던 큰 시련을 겪었는데, 힘든 시기에 천부경(대종교 기본경전)을 접하면서 심신의 위안을 받았다. 50세를 기점으로 다른 인생을 살겠다며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일이기도 했기에 꾸준히 준비해왔고, 퇴직 이후 토질 및 기초기술사 생활을 하면서 이전에 없던 시간적인 여유가 생겼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천부경, 환단고기, 주역, 정역 등 우리 민족의 뿌리가 담긴 이론서들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치열한 권력투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억울하게 당하고도 하소연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현실에 부딪히면서 우리의 삶은 이론대로 흘러가지 않으며, 순리에 부합하는 인생이 최고 남는 장사라는 평범하지만 비범한 진리를 경전을 공부하면서 알게 됐다.
▲저서 '신나는 윷판 인생'을 냈는데, 동양철학으로 풀어낸 윷놀이의 원리와 의미를 설명해달라.
책 제목에서 '신'은 하늘, '윷판'은 땅, '인생'은 사람을 뜻한다. 윷놀이에 대한 개념과 유래를 정리하다 보니 북두칠성, 28수 별자리, 음양오행 등 윷판 안에 천지의 이치가 전부 들어있으며, 우리민족의 경전인 천부경과 주역, 정역에 등장하는 천문도와 이론의 근간은 환단고기(桓檀古記)에서 비롯됐다.
윷판의 점은 29개로 가운데 중심방을 빼면 28개, 하늘의 북두칠성이 돌아가는 모양에서 착안했다. 북극성은 변하지 않는 별이며, 북두칠성의 5배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초저녁엔 동쪽, 12시경엔 북쪽, 한 바퀴를 돌면 하루가 지나는데 윷판 전체가 하늘판과 같으며, 가운데 북극성을 중심으로 시계반대방향으로 돌아간다.
'말'을 빼는 과정에도 동양철학의 기본원리인 상생과 상극이 녹아있다. 도와주기도 하고 업고 가기도 하고, 끌어주고 잡히는 등 내 편과 상대편과의 관계 속에서 상생과 상극이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윷놀이가 재밌어진다. 가다가 잡히면 '되어져갔다'라고 하는데, 사람이 주어진 생을 다 하지 못하고 마감하는 경우이며, 말을 한 바퀴 다 돌려 빼내면 '돌아갔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천수(天壽)를 누리고 생을 다했을 때와 같은 의미다. 4개의 말은 봄·여름·가을·겨울을 의미하며,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가꿔서 가을에 거둬들이고 겨울엔 쉬는 원리도 천부경의 이론과 맞닿아 있다. '얼이 씨구나'라고 외치며 윷을 던지는 의미는 '얼'은 정신과 마음, '씨구나'는 소원하는 것들이 이뤄지기를 기원하는 추임새로 일종의 주문이다.
▲과거 이순신 장군은 '윷점'을 보고 전투에 임했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난중일기에 나오는 '척자점(擲字占)이 바로 윷놀이다. '도개걸윷모'를 '1-2-3-4-4' 총 4개의 숫자로 보고 64가지 경우의 수를 설정했다. 이는 주역의 64계와 원리를 기반으로 한 것이며, 수마다 전략 방법들을 정해놓고 윷을 던져 나오는 숫자와 대입해 운수를 봤다. 예컨대 '활이 화살을 얻은 것과 같다(如弓得箭)'는 개·도·걸의 2·1·3의 끗수에서 얻은 점사로 활이 화살을 얻듯이 크게 쌓는다는 대축괘(大畜卦)의 의미로 해석했다고 한다.
현재 사용중인 윷판과 북극성 중심의 28수 윷판 <출처=한국세시풍속사전 / 그래픽=한세화 기자> |
크게 3가지로 본다. 첫 번째는 고조선 옛 부여(夫餘)의 윷놀이를 백제의 수도인 지금의 부여로 이어져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지금의 '도개걸윷모'의 시작은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시대 이전인 부여시대부터 비롯된 것으로 백제의 수도인 부여(夫餘·AD 500년)에서 새 윷판을 시작하므로 해서 조상의 하늘 문화를 다시 살리는 원시반본(原始返本)의 의미를 내포한다. 두 번째는 '윷점'으로 전략을 세운 충무공의 고장인 아산이 충남에 있다는 점에서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때 '충(忠)'으로서 나라를 구하고 '효(孝)'로써 부모님께 효도했으며 '절(節)'로써 백의종군을, '의(義)'로써 벗의 의를 저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전쟁터에 나갈 때는 '신(信)'의 정신으로 윷놀이를 통해 공격 시기를 가늠했다고 한다. 세 번째는 대전(大田)이 '한밭'이라는 의미의 큰 윷판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는 점에서다.
▲윷놀이 전도사로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최근 전 세계적으로 신드롬을 일으킨 드라마 '오징어게임'에서 나타난 원방각(圓方角, ○□△)은 북두칠성과 윷놀이에서 비롯됐다. 인류 역사에서 볼 때 원방각 문화는 인류 창세 시기인 태고시대부터 내려온 북두칠성 신앙과 상고시대부터 전해져 온 우리의 전통놀이인 윷놀이의 원리와 맥을 같이한다.
윷놀이에 깃든 주역과 정역의 의미를 다시 새기며, 정역의 상생의 삶을 추구하되 주역의 상극의 삶을 감내해야 하는 현실을 지혜롭게 헤쳐나가는 지혜를 윷을 통해 얻었으면 한다. 어지러운 시기에 윷놀이를 통해 우주의 이치와 하늘의 뜻을 깨닫고, 자신의 본분을 지키며 사람 인(人)자에서 의미하는 소처럼 우직한 걸음으로 살아간다면 인생사에서 벌어지는 모든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한세화 기자 kcjhsh99@
김홍석 윷놀이 장인이 중도일보 스튜디오에서 기자와 인터뷰 하는 모습. 사진=이성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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