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린아 변호사 |
이 약사는 약국에 방문하는 소비자들이 약이나 반창고, 음료 등 사회통념상 가격이 일정 범위 이내에 있는 상품의 경우 특별히 가격을 확인하지 않고 구입한다는 점을 악용해, 마스크 한 장, 숙취해소제 한 병, 반창고 한 통 등에 '5만 원'이라는 가격표를 붙여 놓고 물건을 판매했다.
약국이 일반의약품의 가격을 임의로 책정하는 이른바 '의약품 판매자 가격표시제'에 따르면 약사법상 저촉되는 부분이 없다는 점, 민법상 계약의 법리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철회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교묘하게 이용한 것이다.
이러한 경우 소비자가 결제 금액을 환불받기 위해서는 민사소송을 통해 '사기에 의한 의사표시' 또는 '착오로 인한 의사표시' 등의 취소 사유를 주장·입증해야만 하고, 5만원, 10만원을 환불받기 위해서 소송까지 불사할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기 때문에, 약사는 항의하며 환불을 요구하는 소비자들에게 당당하게 민사소송에 대한 안내까지 했다.
약사의 부당한 영업 행태에 대한 성토를 넘어, 필자는 이 사건을 통해 거의 매일을 소비자로 살아가는 우리가 꼭 알아두어야 할 생활법률상식을 알려드리고자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편의점, 마트, 백화점, 온라인쇼핑몰 등에서 물건을 구입하고도 '단순변심'을 이유로 손쉽게 환불을 받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포장을 개봉하거나 사용한 상태가 아니라는 전제 하에서.
그러나 그동안 별 생각 없이 받아온 '단순변심에 의한 환불'은 대부분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특별법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거나, 소비자의 편의를 위해 사업자가 자체적으로 정한 정책에 따라 제공한 서비스였을 것이다.
민법상 계약의 법리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소비자가 청약(請約)의 의사표시(물품 구매를 희망하여 물품을 계산대에 올려놓는 행위 등)를 하고, 사업자가 이를 승낙(承諾)함으로써 금액 결제가 이루어지면 물건의 하자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환불이 불가하다.
따라서 위 '약국 사건'과 같이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지는 일시불 거래에 있어서 소비자는 물품을 구입하기에 앞서 물품의 구매 의사가 확정적인지, 가격은 적당한지, 크기나 규격이 적정한지 등에 대해 꼼꼼하게 확인하고 구매 여부를 결정하여야 한다.
다만 우리나라는 할부거래, 전자상거래, 통신판매, 방문판매 등의 거래에서는 충동구매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일정 기간 재고(再考)해 본 후 계약체결 의사를 철회할 수 있도록 할부거래에 관한 법률,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전자상거래법') 등 특별법을 통하여 소비자의 청약철회권을 인정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특히 자주 사용하는 온라인 거래에 있어서는 전자상거래법에 따라 재화의 공급이 이루어진 날(물품을 배송받은 날)로부터 7일 이내에 청약 철회(반품 요청)가 가능하다.
청약 철회가 제한되는 경우는 △소비자의 사용 또는 책임 있는 사유로 재화가 훼손되거나 가치가 감소한 경우 △시간의 경과로 재판매가 곤란할 정도로 가치가 하락된 경우 △복제 가능한 재화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주문에 의해 개별적으로 생산되는 재화의 경우 △통신판매사업자에게 회복할 수 없는 중대한 피해가 예상되는 경우 △사전에 당해 거래에 대해 별도로 그 사실을 고지하고 소비자의 서면 동의를 받은 경우 등으로 한정되어 있다.
따라서 사업자가 물품 판매를 안내하면서 "조립 후에는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해 재판매가 불가하므로 청약 철회가 불가하다"거나, "흰색 의류의 경우 반품이 제한된다", "세일 상품의 경우 반품이 불가하다"고 사전에 고지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소비자에게 불리한 계약으로서 효력이 없고, 소비자는 청약 철회를 할 수 있다.
만약 사업자가 환불을 거부하는 경우 한국소비자원의 소비자분쟁조정신청을 통해 소비자 개인이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전문가들의 객관적이고 공정한 심의 및 의결을 거쳐 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 이 글을 통해 독자들이 조금 더 현명한 소비자로 거듭날 수 있기를!
/최린아 이혼·가사법 전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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