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0부터 9까지의 숫자 중 특히 '3'을 좋아한다. '1'은 외롭고, '2'는 조금 부족한 듯하고, '3'은 완성된 느낌이다. '삼총사', '삼세번', '삼 세판'에도 '3'이 쓰이고, 가위바위보도 3개의 손모양으로 놀이를 한다. 출발 시점을 카운트할 때 또는 어떤 일이나 동작을 맞출 때도 보통 '셋'에서 시작한다.
나라마다 문화권마다 좋아하는 숫자를 알아보니 각양각색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음양사상의 영향으로 나처럼 '3'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음양사상에서는 숫자 '3'이 양을 나타내는 첫 번째 수 '1'과 음을 나타내는 첫 번째 수 '2'가 합해진 조화로운 숫자라고 여겼다. 이웃나라 중국인들은 '8'을 유난히 좋아한다. 이유는 '돈을 번다', '재산을 모은다'는 뜻을 지닌 '발(發)'과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인 데, '8'이 들어가는 주소나 전화번호, 자동차 번호에 거액의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되기도 한다. 2008년 열린 베이징 올림픽은 8월 8일 저녁 8시 8분에 개회식을 하기도 했다.
서양 문화권에서는 종교적인 영향으로 숫자 '7'을 선호한다. 기독교에서 하느님이 6일 동안 만물을 창조하고 7일째 되는 날 쉬었다는 이유에서다. 또 '7'은 하늘의 완전함을 나타내는 수인 '3'과 땅의 완전함을 나타내는 수인 '4'가 합해진 수로, 하늘과 땅이 합해져서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여겼다.
반면 '13'이라는 숫자는 매우 싫어한다.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한 날이 바로 '13일의 금요일'이었기 때문에 이날을 특히 불길하게 여겨왔다. 1년 중 '13일의 금요일'은 1~3번 정도 나올 수 있는 데 올해는 다행스럽게도(?) 5월에 한 번뿐이다.
아라비아숫자를 발명한 인도인들은 '9'를 좋아한다. '9'는 한자리로 적을 수 있는 가장 큰 수이며 '완성', '완벽함'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국인들도 '8' 다음으로 좋아하는 숫자가 '9'다. '九'가 길다거나 장수한다는 의미를 가진 '주(久)'와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 홀수 중 가장 큰 수인 '9'는 상서롭다고 여겨 황제와 관련된 숫자이기도 하다. 음력 9월 9일은 양수가 겹쳤다는 중양절로 전통 명절이기도 하며, 이날 결혼을 많이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숫자 '9'가 들어간 나이를 '아홉수'라고 해서 결혼·이사·이직 등을 피하고, 일이 잘 안풀린다든지 건강을 조심해야 한다든지의 말들을 한다. 환갑을 앞둔 59세에는 생일잔치까지 꺼린다.
특히 '9'가 3번 반복된 1999년에는 전세계가 세기말 불안에 휩싸이기도 했다. 1999년은 새 천년에 대한 기대감도 높았지만, 한편으로는 Y2K로 불리던 밀레니엄 버그와 노스트라다무스가 세계 멸망을 예언했다고 알려져 있어 더욱 주목을 받았던 해이다. 연도가 '00년'이 '2000년'이 아닌 '1900년'으로 오기된다던가, 아예 '2000년'이라는 연도가 인식이 안돼 전기·전력 등에 의존하는 시설들을 중심으로 연도 숫자 오류로 대혼란이 발생할 것이라는 공포가 전 세계를 휩쓸었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평온하게 21세기를 맞이하게 되면서 무성했던 소문들은 한때의 해프닝으로 끝났다.
나는 올해 한국 나이로 49세, 흔히 말하는 '아홉수'다. '구미호'도 못 피해 간 '아홉수의 저주'(?)에 빠질까 전전긍긍하기 보다는, 다시 오지 않을 40대의 마지막 한 해를 즐겁고 행복한 일들로 채우고 완성해 우주 만물의 원리를 깨닫는 시기인 '지천명'을 웃으면서 맞이하고 싶다.
현옥란 편집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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