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분단은 이산가족에게 풀지 못한 한을 남기고 대륙을 자유롭게 오가는 상상력까지 옭아매고 있다. 사진은 민간인통제선의 철책. (사진=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제공) |
▲평양행KTX 얼마요
"아저씨, 평양행 기차표 주세요!"
"엥? 너 지금 뭐라고 했니? 평양행 기차표라고 했니?"
"네, 맞아요. 우리 큰할머니 고향이 평양이거든요."
심문선 작가의 창작동화집 '평양행 기차표'에서 북녘 고향이 그리워 몸져누운 증조할머니를 위해 기차표를 구하러 나온 손녀딸을 그린 동화책의 내용이다. 평양행 기차표가 있어야 우리 할머니가 나을 수 있다며 우는 아이를 위해 역장이 급히 평양행 기차표를 만들어 고사리손에 쥐여 주며 "언제든지 철도가 연결되면 너희 할머니를 첫 번째 손님으로 모실게"라며 위로하는 것으로 동화책은 마무리됐다.
남한의 가장 끝단에 있는 역이자 북한을 찾아가는 가장 첫번째 역이 될 도라산역. (사진=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제공) |
선우훈 씨는 "기차가 북녘까지 이어진다면 당장에 평양에서 멀지 않은 고향 정주역까지 한달음에 달려가 대문 앞에서 어머니를 불러보고 싶다"며 "집안 사람들이 대대로 사용할 납골당을 만들었는데 이승을 떠나서도 가족은 헤어지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맺힌 한을 전했다.
▲속도 내는 남북 철도연결
열차를 타고 대륙으로 가는 철길이 머지않은 미래 다시 뚫린다. 단절된 구간을 잇는 철도 연결사업이 실제 추진되고 있다. 2027년이면 부산에서 출발한 기차가 동해를 따라 금강산을 거쳐 두만강까지 갈 수 있는 동해북부선이 완성된다. 현재 단절돼 있는 강릉~고성 제진 구간 110.9㎞를 잇는 작업이 1월 5일 마침내 첫 삽을 떴다. 동해북부선이 마무리되면 물류는 물론 관광까지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일본이 전쟁을 벌이고 물자를 수탈하기 위해 설치한 철길을 우리는 평화와 공존을 위해 사용하고, 한반도가 대륙으로 뻗어 나가는 기회가 될 전망이다. 대륙철도망인 시베리아 횡단철도(TSR)과 만주 횡단철도(TMR), 몽골 횡단철도(TMGR)을 북한을 경유해 만날 수 있는 기반이 갖춰지기 때문이다.
끊어진 철길을 다시 잇는 사업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4.27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내용이다. 2008년 이후 10여년 만에 남북 정상이 논의 테이블에 앉아 뜻을 모은 것이다. 당시 합의에선 동해북부선뿐 아니라 서울과 신의주를 잇는 경의선 연결에도 공감했다. 남과 북의 수도를 관통해 남북철도 노선 중 가장 비중 있게 다뤄지는 경의선이 완전히 개통될 땐 경제적 효과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증기기관차에서 KTX까지 한국철도120년' 저자 배은선 오류동역장은 코레일이 중국과 러시아, 북한 등 아시아 공산권 국가들의 찬성을 얻어 2018년 국제철도협력기구(OSJD) 정회원에 가입한 것을 대륙횡단철도를 잇는 첫 단추로 평가했다.
배은선 역장은 "전쟁으로 끊어졌던 경의선은 이미 연결돼 2007년 시험운행을 마쳤고 그 후 1년간 화물열차가 운행되기도 했다"라며 "문제는 경원선과 동해선 연결이고, 연결된 후에는 북한의 열악한 철도 인프라를 대폭 개량해야 한다는 더 큰 숙제가 남아 있다"라고 설명했다.
▲100년 전 오래된 미래
대전역에서 기차에 탑승해 1만2000㎞ 떨어진 독일 베를린 동역 2번 플랫폼에 내리는 일이 상상에서만 가능할까. 우리는 이미 100년 전에 한반도를 종단해 대륙을 건너 유럽까지 기차로 찾아갔다. 대륙국가라는 말이다. 1936년 독일 베를린올림픽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한 손기정(1912~2002), 남승룡(1912~2001) 두 조선인 청년은 기차를 이용했다. 부산역에서 경부선을 탑승해 경성(서울)을 지나 중국 단둥(안동)역을 거쳐 하얼빈을 통해 국경을 넘어 러시아(소련)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몸을 실었다. 손기정 선생의 증언을 들어보자. 손기정 선생은 자서전 '나의 조국 나의 마라톤'에서 "우리가 탄 열차는 여객용 기차가 아니라 군 장비 수송용 화물 열차 같은 것이었다. 열차는 때 없이 멈춰 섰다가 예고도 없이 제멋대로 달렸다. 어떤 날은 종일 보리밭 사이를 달리다가, 또 어떤 날은 호수를 끼고 한없이 달리기도 했다." 손기정이 한없이 호수를 끼고 달렸다는 곳은 이르쿠츠크 지역의 바이칼호 순환노선이었을 것이고 부산을 출발해 2주 만에 비로소 베를린에 도착했다.
부산을 출발해 프랑스와 독일을 다녀온 나혜석 작가와 마라토너 손기정 옹. |
▲상상은 모험을 낳아 현실로
스스로 선을 넘는 것을 좋아한다고 표현한 건축가 오영욱 씨는 2018년 프랑스 파리를 출발해 서울까지 기차를 타고 대륙을 횡단하는 여행을 감행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두 손을 맞잡고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을 때 오영욱 작가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남역을 거쳐 폴란드 테레스폴역으로 국경을 넘는 기차 객실이었다. 그는 파리에서 대륙횡단 기차여행을 시작해 결국 중국 단둥에서 기차 대신 여객선으로 갈아 타 귀국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의 여행기를 역순으로 쫓아가면 앞서 손기정 옹과 나혜석 작가가 갔던 철길을 재현할 수 있다.
경기도 파주 오두산통일전망대 전시관에 서울과 평양 그리고 프랑스 파리를 잇는 국제열차 모형이 전시돼 있다. (사진=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제공) |
임재근 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사무처장은 "분단은 철도와 국토의 단절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까지 단절시켜 대전역에서 국제 열차를 탑승할 수 있다는 상상조차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섬나라보다도 열악한 환경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분단극복이 절실하며, 남북철도를 연결해 대륙으로 뻗어 나가게 된다면 한반도 평화와 함께 우리의 상상력도 무궁무진하게 뻗어 나갈 것이다"고 말했다.
임병안·임효인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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