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철규 명장 |
대전 중구 선화동 옛 충남도청 맞은편 건물 한 켠에 자리한 류철규(70·사진)씨의 작업장에는 천수관음상과 달마상 서각(書刻·나무에 새긴 글과 그림)과 육각 돌판에 경전 글귀를 새긴 전각(篆刻), 조선 국새 복원작, 반야심경 전각 도장세트 등 수많은 작품으로 빼곡하다.
도장 대신 서명이 각종 계약에서 일상화되고 있지만 50년 넘게 도장 파는 일을 업으로 삼아온 류 씨는 "도장쟁이가 아닌 예술가가 되라"는 스승의 말씀을 새기며 도장업에 종사한 도장 장인이다.
2003년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된 인장공예 장인인 류 씨는 전국에 총 7명의 인장가 중 세 번째로 자격을 부여받으면서 지역 1호가 됐다.
류 씨의 자부심은 그의 도장 가게인 '성호사'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전국의 도장 가게 중에서 가장 크기로 유명한 '성호사'는 통상 건물 귀퉁이 '쪽방'에 자리잡은 도장 가게의 이미지를 바꾸고 싶어 30년째 자리했던 자리에서 작은 공간을 확장한 류씨의 작업공간이자 사업장이다. 지난해 12월에는 '백년가게' 인증을 받았다.
20일 저녁 성호사에서 만난 류철규 명장은 도장작업이 아닌 붓글씨 쓰기에 여념이 없었다. 하루에 2개 이상 인장작업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국가명장이 된 후 지금까지 고수하는 그만의 철학이다. 작업 물량을 맞추느라 서두르지도 않으며, 날짜를 촉박하게 요구하는 작업은 정중히 거절한다. 류 명장은 "오전에 딱 2개만 작업하고 오후엔 붓글씨를 쓰거나 서각과 전각 등 작품활동에 매진한다"라며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작업이고, 받는 사람에게 좋은 일만 생기길 바라는 마음을 투사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천안 병천에서 태어난 그는 독립영웅 류관순 열사의 직계손이자 조선 후기 성리학자 겸 의병장이던 의암 류인석의 손자다. 17살 되던 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가세가 급격히 기울자 학업을 접고 호구지책을 찾던 그에게 동네 어르신이 권한 인장공예의 길이 평생에 업(業)이 됐다. 이후 대전의 인장가 이석성 문하에 들어가 10년간 도장기술 전반과 한학을 익히고, 이석성의 스승 박인규 명인을 만나 수련의 깊이가 더해졌다. 그는 "방 얻을 돈조차 없어 가게에서 쪽잠을 자며 스승의 작품을 밤새 흉내냈다"며 "도장쟁이로 남지 말고 예술가가 되라던 스승의 조언이 가슴에 새겨져 2년 동안 한자 8500자를 통째로 외웠다"라며 회상했다.
그는 인장을 만들기 전 의뢰인의 사주부터 살핀다. 성격과 체질에 맞는 나무 재료와 조각형태를 결정하기 위해서다. 부드러운 사람에겐 강한 서체로, 강성인 사람에겐 기운을 상쇄하기 위한 장(印)자를 새겨 넣기도 한다. 서명 문화와 기계도장 확산으로 수작업 인장이 사양길로 접어든 지 오래지만, 인장문화 복원 활동은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연구실 운영은 중단했지만, 몇 년 전부터 뜻이 있는 후배들을 양성하며 인장문화 알리기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류 명장은 "인장박물관 건립이 최종 목표다. 전통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인장을 통해 우리 것의 우수성을 잊지 않게 하고 싶다"며 "대전시·충남도명장 등 지역에서도 인장 명인을 발굴·육성하는 정책이 강화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도장으로 만든 전국지도 |
'반야심경'과 '부모은중경'을 새겨넣은 도장세트. |
한세화 기자 kcjhsh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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