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키호테 世窓密視] 어떤 전설-독서의 선과(善果)

  • 오피니언
  • 홍키호테 세창밀시

[홍키호테 世窓密視] 어떤 전설-독서의 선과(善果)

  • 승인 2022-01-22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서점을 찾았다. 손님이 뜸했다. <월간 여행스케치>를 샀다. 뒷면에 '한국 ABC 협회 2020 공지 결과 잡지 인증 부수'가 게재되어 눈길을 끌었다. 이에 따르면 실제 판매를 의미하는 '유료부수'를 기준으로 할 때 1위는 35,507부인 '여행스케치'였다.

2위는 '여성조선'(29,432), 3위엔 '연합이매진'(23,853)이 올랐다. 4위엔 '월간조선'(20,052), 그 뒤를 이어 5위는 '월간 샘터'가 17,988부로 점프했다.

압도적 1위에는 '음식과 사람'이 무려 300,000부로, 2위는 '인산의학'이 158,516부로 그 뒤를 이었다. 그러나 한국 ABC 협회가 인정하는 잡지 인증 부수는 실제 판매되는 것을 기준으로 하므로 별 의미가 없는 셈이다.

나는 지금도 '여행스케치' 외 '월간조선'과 '월간 샘터'를 구독한다. 특히 '월간 샘터'는 오랫동안 정기독자로 돈독한 정을 쌓아왔다. '월간 샘터'는 경영상황 악화 등으로 2019년 폐간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와 같은 열혈독자들의 기부 등으로 위기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월간 샘터'는 한때 정기구독자 수 50만 명을 넘나들며 이른바 '국민 잡지' 역할을 했던 정말 대단한 잡지였다.

이해인 수녀와 법정 스님, 피천득 수필가, 정채봉 동화작가, 최인호 소설가, 장영희 교수 등이 필진으로 참여했을 정도로 필진까지 막강했다. 이쯤에서 과거를 잠시 소환한다.

80년대 중후반기 무렵 당시엔 지금처럼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이 없거나 활성화되지 못했다. 따라서 아날로그적인 정기구독 독자가 많았다. 당시 나는 모 언론사에서 판매부장을 했다.

일간지 외에도 시사 주간지와 월간지를 발행하는 회사였다. 여기서 나는 월간지를 집중적으로 판매하는 세일즈맨으로 일했다. 1년 치 구독료를 선납으로 받고 우편으로 보내주는 시스템이었다.

그때 나는 보통 한 달에 500~600명의 신규독자를 유치하는 발군의 실력을 뽐냈다. 당연히 전국 판매왕에 등극했다. 돈도 잘 벌었다. 당시 동네에서 승용차가 있는 집은 내가 유일했다.

금상첨화가 이어졌다. '최우수판매사원'이라고 동남아 여행 티켓이 포상으로 나왔다. 그런데 여행 일정이 공교롭게 관공서 정기인사 시즌과 맞물렸다.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이때는 매출이 더욱 껑충 뛰는 시기였다.

나 대신 같이 근무하던 직원에게 양보했다. 덕분에 그는 공짜로 동남아 구경을 잘하고 왔다며 귀국 즉시 술을 샀다. 백구과극(白駒過隙)은 '흰 말이 지나가는 순간을 문틈으로 보듯 눈 깜빡할 사이'라는 뜻이다.

세월은 그처럼 참 빠르다. 또한 빠른 만큼의 변화를 요구한다. 쓸데없는 잔소리겠지만 당시의 내 실적만을 추출하여 지금의 '한국 ABC 협회 공지 결과 잡지 인증 부수'에 삽입한다면 어떤 결과가 도출될까?

그 회사에서 약 6년간 근무했으니 어림잡아도 독자 수만 무려 36,000명(월 500명 x 12달 x 6년)에 이를 듯싶다. 이를 오늘날에 대입한다면 단숨에 유료부수 독자 1위에 올라선다.

이렇게 괜한 소리를 하는 까닭은 작금 독서인구가 얼추 절멸한 때문이다. 철 지난 바닷가처럼 황량한 서점에서도 확인했듯 지금 지하철이나 시내버스에서도 책을 보는 사람은 없다.

오는 주말이면 명불허전의 교수 겸 학자인 지인이 출판기념회를 한다. 난 그동안 네 권의 저서를 출간했지만, 입때껏 화려한 출판기념회는 못 해봤다.

다만 대전문화재단에 신청한 출판 사업비 지원 요청이 순조로이 이뤄진다면 올봄 안으로 다섯 번째 저서를 낼 수 있다. 한때 연간 6,000명의 신규독자를 창출했던 어떤 전설의 세일즈맨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도 책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 오늘날 기자가 되고 작가까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꾸준한 독서가 가져다준 선과(善果)였다. 그나마 여기서 일말의 위안을 얻는다.

홍경석 / 작가·'초경서반' 저자

초경서반-홍경석
* 홍경석 작가의 칼럼 '홍키호테 世窓密視(세창밀시)'를 매주 중도일보 인터넷판에 연재한다. '世窓密視(세창밀시)'는 '세상을 세밀하게 본다'는 뜻을 담고 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이영경 성남시의회 의원, 초등생 자녀 학폭 사건 사과문 발표
  2. [국감현장] "검경 수사권 조정 후 수사역량 줄고 미제사건 많아" 국감서 지적
  3. [국감현장] 육군 병력 17만 명 감소... 초급간부, 중견간부 처우개선 절실
  4. [국감현장] R&D 삭감 회복 대책·정년 폐지 등 처우 개선… 노벨과학상 기대도
  5. 1천억대 전자담배 기술 발명 배상금 소송 개시
  1. 박안수 육군총장 "北 쓰레기풍선 GPS교란 맞서 최정예 육군 건설에 집중"
  2. [제105회 전국체전]대전·세종·충남선수단, 충청권 체육의 저력 전국에 과시
  3. [WHY이슈현장]둔산지구 개발에 사라진 '삼천동'…"아 삼천(三川)의 대전이여"
  4. 경비노동자 초단기계약 악습 끊고 1년이상 계약 추진... 첫발 내딘 계룡리슈빌학의뜰아파트
  5. 계룡건설, 동반성장지수평가 '우수' 등급 획득

헤드라인 뉴스


세종 갈등현안 일방통행 거듭… 사회적 합의 시스템 찾아야

세종 갈등현안 일방통행 거듭… 사회적 합의 시스템 찾아야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2026년 세종 국제정원도시박람회 개최를 둘러싼 논쟁에 딱 어울리는 격언이다. 최민호 세종시장을 비롯한 집행부, 국민의힘 시의원 7명은 정원박람회를 통한 국비 확보로 붐을 조성한 데 이어, 지방·국가정원 등록으로 나아가겠다는 입장을 강변해왔다. 닭이 우선이란 뜻이고, 순천시가 걸어온 길로 통한다. 반면 임채성 의장을 포함한 더불어민주당 시의원 13명 중 12명은 지방정원(지자체 자체 지정) 또는 국가정원(정부 승인) 등록 흐름을 만든 뒤 '국제 행사'를 진행해도 늦지 않다는 반론으로 맞서고 있다..

최민호 시장, 10월 17일 시정 복귀...플랜 B 찾는다
최민호 시장, 10월 17일 시정 복귀...플랜 B 찾는다

최민호 세종시장이 10월 17일 시정 복귀와 함께 플랜 B 실행을 예고했다. 플랜 B는 '2026년 세종 국제정원도시박람회' 개최란 플랜 A(원안)이 사실상 무산 상황에 놓이면서, 다시 찾아야 할 차선책을 의미한다. 그는 이날 오전 10시 10분 보람동 시청 브리핑실에서 기자 간담회를 갖고, 미래 정원도시 조성과 지역 경제 활성화 방안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10월 11일 오후 4시경 단식 중단을 선언하고, NK세종병원에서 요양 치료를 받은 뒤 6일 만의 복귀 메시지다. 공직사회와 지역 언론, 시민사회의 관심이 집중된 배경이다. 최..

디딤돌대출 한도 축소…지방 주택시장 위협하나
디딤돌대출 한도 축소…지방 주택시장 위협하나

정부가 최근 무주택 서민들을 대상으로 제공하는 '디딤돌대출' 한도를 줄이기로 하면서, 전용 85㎡ 이하·평가액 5억 원 미만 주택이 많은 지방 부동산 시장이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17일 HUG(주택도시보증공사) 등에 따르면, 최근 국토교통부와 HUG는 시중은행에 디딤돌 대출 취급 제한을 요청하는 공문을 전달했다. 신한·하나은행 등은 21일부터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고, 이에 앞서 KB국민은행은 14일부터 이를 반영한 대출을 취급하고 있다. 디딤돌 대출은 부부 합산 연소득 6000만 원 이하인 경우 최대 5억 원 주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주차난 가중시키는 방치 차량 주차난 가중시키는 방치 차량

  • 대전 유성구, 겨울철 대비 도로 안전 캠페인 실시 대전 유성구, 겨울철 대비 도로 안전 캠페인 실시

  • 카이스트에서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 카이스트에서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

  • 전기차 화재…‘이렇게 탈출 하세요’ 전기차 화재…‘이렇게 탈출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