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위는 '여성조선'(29,432), 3위엔 '연합이매진'(23,853)이 올랐다. 4위엔 '월간조선'(20,052), 그 뒤를 이어 5위는 '월간 샘터'가 17,988부로 점프했다.
압도적 1위에는 '음식과 사람'이 무려 300,000부로, 2위는 '인산의학'이 158,516부로 그 뒤를 이었다. 그러나 한국 ABC 협회가 인정하는 잡지 인증 부수는 실제 판매되는 것을 기준으로 하므로 별 의미가 없는 셈이다.
나는 지금도 '여행스케치' 외 '월간조선'과 '월간 샘터'를 구독한다. 특히 '월간 샘터'는 오랫동안 정기독자로 돈독한 정을 쌓아왔다. '월간 샘터'는 경영상황 악화 등으로 2019년 폐간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와 같은 열혈독자들의 기부 등으로 위기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월간 샘터'는 한때 정기구독자 수 50만 명을 넘나들며 이른바 '국민 잡지' 역할을 했던 정말 대단한 잡지였다.
이해인 수녀와 법정 스님, 피천득 수필가, 정채봉 동화작가, 최인호 소설가, 장영희 교수 등이 필진으로 참여했을 정도로 필진까지 막강했다. 이쯤에서 과거를 잠시 소환한다.
80년대 중후반기 무렵 당시엔 지금처럼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이 없거나 활성화되지 못했다. 따라서 아날로그적인 정기구독 독자가 많았다. 당시 나는 모 언론사에서 판매부장을 했다.
일간지 외에도 시사 주간지와 월간지를 발행하는 회사였다. 여기서 나는 월간지를 집중적으로 판매하는 세일즈맨으로 일했다. 1년 치 구독료를 선납으로 받고 우편으로 보내주는 시스템이었다.
그때 나는 보통 한 달에 500~600명의 신규독자를 유치하는 발군의 실력을 뽐냈다. 당연히 전국 판매왕에 등극했다. 돈도 잘 벌었다. 당시 동네에서 승용차가 있는 집은 내가 유일했다.
금상첨화가 이어졌다. '최우수판매사원'이라고 동남아 여행 티켓이 포상으로 나왔다. 그런데 여행 일정이 공교롭게 관공서 정기인사 시즌과 맞물렸다.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이때는 매출이 더욱 껑충 뛰는 시기였다.
나 대신 같이 근무하던 직원에게 양보했다. 덕분에 그는 공짜로 동남아 구경을 잘하고 왔다며 귀국 즉시 술을 샀다. 백구과극(白駒過隙)은 '흰 말이 지나가는 순간을 문틈으로 보듯 눈 깜빡할 사이'라는 뜻이다.
세월은 그처럼 참 빠르다. 또한 빠른 만큼의 변화를 요구한다. 쓸데없는 잔소리겠지만 당시의 내 실적만을 추출하여 지금의 '한국 ABC 협회 공지 결과 잡지 인증 부수'에 삽입한다면 어떤 결과가 도출될까?
그 회사에서 약 6년간 근무했으니 어림잡아도 독자 수만 무려 36,000명(월 500명 x 12달 x 6년)에 이를 듯싶다. 이를 오늘날에 대입한다면 단숨에 유료부수 독자 1위에 올라선다.
이렇게 괜한 소리를 하는 까닭은 작금 독서인구가 얼추 절멸한 때문이다. 철 지난 바닷가처럼 황량한 서점에서도 확인했듯 지금 지하철이나 시내버스에서도 책을 보는 사람은 없다.
오는 주말이면 명불허전의 교수 겸 학자인 지인이 출판기념회를 한다. 난 그동안 네 권의 저서를 출간했지만, 입때껏 화려한 출판기념회는 못 해봤다.
다만 대전문화재단에 신청한 출판 사업비 지원 요청이 순조로이 이뤄진다면 올봄 안으로 다섯 번째 저서를 낼 수 있다. 한때 연간 6,000명의 신규독자를 창출했던 어떤 전설의 세일즈맨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도 책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 오늘날 기자가 되고 작가까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꾸준한 독서가 가져다준 선과(善果)였다. 그나마 여기서 일말의 위안을 얻는다.
홍경석 / 작가·'초경서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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