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동석 팔뚝만한 더덕을 방망이로 두드려 양념장을 발라 석쇠에 구워먹는 건 어떻고. 자연산 더덕은 산삼 버금간다. 아삭아삭 씹히는 맛과 독특한 향은 몸이 절로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옻나무 우린 물로 담근 된장에 싸리버섯을 넣고 끓인 찌개도 있다. 옻나무는 몸이 냉한 사람에겐 훌륭한 한약재이기도 하다. 한여름엔 초계국수가 일품이다. 온갖 약재를 넣고 닭 백숙을 끓여먹고 남은 육수에 식초와 겨자를 푼다. 거기에 삶은 국수를 넣는다. 채썬 오이와 반으로 가른 삶은 계란을 얹으면 금상첨화. 시원한 계곡물이 흐르는 개울가 평상에서 먹는 초계국수는 진시황의 밥상이 부럽지 않다. 봄은 나물 천국이다. 세숫대야만한 대접에 밥을 퍼 엄나무 순과 취나물, 직접 담근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고 썩썩 비벼먹는다. 모든 것이 자연의 선물이다.
나는 매일 밤 '자연인'이 요리한 고품격 야식을 먹는다. 도라지, 더덕은 기본이고 능이버섯, 목이버섯, 산삼 등 온갖 진미를 맛본다. 알록달록 꽃 비빔밥은 먹기 아까울 정도다. 미슐랭 별 다섯 개를 받아야 마땅하다. 이 고급지고 귀한 요리를 먹다보면 배우는 것도 많다. 요즘은 보문산에 가면 나무들을 찬찬히 살핀다. 제피와 산초는 이파리가 흡사하다. 여름에 이것들을 조금 따다가 고등어조림에 넣어 먹어봤다. 비린내가 훨씬 덜했다. 어렸을 때 따 먹은 새콤한 망개(내 고향에선 멍가라고 불렀다) 뿌리는 토복령이라고 해서 귀한 약재다. 작년 가을부터 금요장터에서 자연산은 아니지만 더덕, 도라지를 사다 먹는다. 미세먼지가 뿌연 겨울이나 봄엔 고생 깨나 하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기관지나 폐에 아주 좋다고 한다.
요즘 중년 부인들의 성화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남편이 '나는 자연인이다'만 보기 때문이다. 어느날 갑자기 남편이 회사에 사표 던지고 배낭 하나 메고 산으로 들어갈까봐 걱정인 모양이다. 물질의 풍요 속에서 인간은 돈의 노예가 되어 벼랑길 같은 바벨탑을 기어 오르기 바쁘다. 사기와 배신이 난무하고 사각의 링에선 피투성이가 되어 간다. 결국 '패자'는 깊은 산으로 들어가 꼭꼭 숨어버린다. 그런데 거기가 낙원이었다. 상처는 아물고 튼튼해진 뼈에 단단한 근육이 붙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일은 노동이 아니라 놀이였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헤르만 헤세 역시 쉽고 편안하게 사는 법을 알지 못했으나 한가지만은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그건 아름답게 사는 것이었다. 헤세는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헤세의 정원은 풍성한 채소밭이 만들어지고, 꽃들도 무성했다. 거기서 일하는 헤세에겐 또다른 세상이 보였다. 한때 세상은 이런 헤세를 마치 세상 모르고 정원이나 가꾸는 현실 도피적 사람으로 폄훼하기도 했다.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인생의 행로는 달라진다. 엊그제 친구가 들에서 캔 냉이를 한 소쿠리 안겨 주었다. 헉! 냉이 뿌리가 도라지만 했다. 진한 갈색의 냉이에 코를 박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아, 봄이 오는구나. 얼어붙은 야생의 땅에 단단히 뿌리내린 냉이의 생명력이 경이롭다. 자연이 내 마음 속으로 성큼 들어온다. 나도 자연인이(고 싶)다. <지방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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