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식탐] 고품격 야식, 못 참아!

  • 오피니언
  • 우난순의 식탐

[우난순의 식탐] 고품격 야식, 못 참아!

  • 승인 2022-01-19 17:41
  • 신문게재 2022-01-20 18면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우난순 수정
오늘밤은 '고파장'을 먹는다. 고사리와 대파를 넣고 푹 끓인 것이다. 먼저 두툼한 냄비를 불에 달궈 파기름을 만든다. 거기에 고춧가루를 넣고 볶다가 물을 붓고 고사리, 대파, 표고버섯을 듬뿍 넣어 끓이면 끝. 육개장처럼 얼큰하고 훌훌 불며 먹으니 땀이 나면서 몸이 후끈 달아오른다. 쫄깃한 식감의 고사리가 쇠고기를 능가하는 걸 안 먹어 본 사람은 어찌 알까. 냉이 파스타도 있다. 팬에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마늘 양파 넣어 살짝 볶은 후 파릇한 냉이 한 줌 넣고 후추도 살짝 뿌린다. 마지막에 삶은 파스타를 넣는다. 이탈리아엔 봉골레·알리오올리오 파스타가 있다면 나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냉이 파스타를 먹는다. 진한 향의 냉이 파스타를 상상해 보라. 음식 레시피의 변주는 무한하다.

마동석 팔뚝만한 더덕을 방망이로 두드려 양념장을 발라 석쇠에 구워먹는 건 어떻고. 자연산 더덕은 산삼 버금간다. 아삭아삭 씹히는 맛과 독특한 향은 몸이 절로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옻나무 우린 물로 담근 된장에 싸리버섯을 넣고 끓인 찌개도 있다. 옻나무는 몸이 냉한 사람에겐 훌륭한 한약재이기도 하다. 한여름엔 초계국수가 일품이다. 온갖 약재를 넣고 닭 백숙을 끓여먹고 남은 육수에 식초와 겨자를 푼다. 거기에 삶은 국수를 넣는다. 채썬 오이와 반으로 가른 삶은 계란을 얹으면 금상첨화. 시원한 계곡물이 흐르는 개울가 평상에서 먹는 초계국수는 진시황의 밥상이 부럽지 않다. 봄은 나물 천국이다. 세숫대야만한 대접에 밥을 퍼 엄나무 순과 취나물, 직접 담근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고 썩썩 비벼먹는다. 모든 것이 자연의 선물이다.

나는 매일 밤 '자연인'이 요리한 고품격 야식을 먹는다. 도라지, 더덕은 기본이고 능이버섯, 목이버섯, 산삼 등 온갖 진미를 맛본다. 알록달록 꽃 비빔밥은 먹기 아까울 정도다. 미슐랭 별 다섯 개를 받아야 마땅하다. 이 고급지고 귀한 요리를 먹다보면 배우는 것도 많다. 요즘은 보문산에 가면 나무들을 찬찬히 살핀다. 제피와 산초는 이파리가 흡사하다. 여름에 이것들을 조금 따다가 고등어조림에 넣어 먹어봤다. 비린내가 훨씬 덜했다. 어렸을 때 따 먹은 새콤한 망개(내 고향에선 멍가라고 불렀다) 뿌리는 토복령이라고 해서 귀한 약재다. 작년 가을부터 금요장터에서 자연산은 아니지만 더덕, 도라지를 사다 먹는다. 미세먼지가 뿌연 겨울이나 봄엔 고생 깨나 하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기관지나 폐에 아주 좋다고 한다.

요즘 중년 부인들의 성화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남편이 '나는 자연인이다'만 보기 때문이다. 어느날 갑자기 남편이 회사에 사표 던지고 배낭 하나 메고 산으로 들어갈까봐 걱정인 모양이다. 물질의 풍요 속에서 인간은 돈의 노예가 되어 벼랑길 같은 바벨탑을 기어 오르기 바쁘다. 사기와 배신이 난무하고 사각의 링에선 피투성이가 되어 간다. 결국 '패자'는 깊은 산으로 들어가 꼭꼭 숨어버린다. 그런데 거기가 낙원이었다. 상처는 아물고 튼튼해진 뼈에 단단한 근육이 붙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일은 노동이 아니라 놀이였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헤르만 헤세 역시 쉽고 편안하게 사는 법을 알지 못했으나 한가지만은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그건 아름답게 사는 것이었다. 헤세는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헤세의 정원은 풍성한 채소밭이 만들어지고, 꽃들도 무성했다. 거기서 일하는 헤세에겐 또다른 세상이 보였다. 한때 세상은 이런 헤세를 마치 세상 모르고 정원이나 가꾸는 현실 도피적 사람으로 폄훼하기도 했다.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인생의 행로는 달라진다. 엊그제 친구가 들에서 캔 냉이를 한 소쿠리 안겨 주었다. 헉! 냉이 뿌리가 도라지만 했다. 진한 갈색의 냉이에 코를 박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아, 봄이 오는구나. 얼어붙은 야생의 땅에 단단히 뿌리내린 냉이의 생명력이 경이롭다. 자연이 내 마음 속으로 성큼 들어온다. 나도 자연인이(고 싶)다. <지방부장>
2022011901010008409
게티이미지 제공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기고]대한민국 지방 혁신 '대전충남특별시'
  2. 금강환경청, 자연 복원 현장서 생태체험 참여자 모집
  3. "방심하면 다쳐" 봄철부터 산악사고 증가… 대전서 5년간 구조건수만 829건
  4. [썰] 군기 잡는 박정현 민주당 대전시당위원장?
  5. 기후정책 질의에 1명만 답…대전 4·2 보궐선거 후보 2명은 '무심'
  1. 보은지역 보도연맹 희생자 유족에 국가배상 판결 나와
  2. 안전성평가연구소 '국가독성과학연구소'로 새출발… 기관 정체성·비전 재정립
  3. 지명실 여사, 충남대에 3억원 장학금 기부 약속
  4. 재밌고 친근하게 대전교육 소식 알린다… 홍보지원단 '홍당무' 발대
  5. '선배 교사의 노하우 전수' 대전초등수석교사회 인턴교사 역량강화 연수

헤드라인 뉴스


충청 4·2 재·보궐 결전의 날… 아산·당진·대전유성 결과는?

충청 4·2 재·보궐 결전의 날… 아산·당진·대전유성 결과는?

12·3 비상계엄 이후 탄핵정국에서 펼쳐지는 첫 선거인 4·2 재·보궐 선거 날이 밝았다. 충청에선 충남 아산시장과 충남(당진2)·대전(유성2) 광역의원을 뽑아 '미니 지선'으로 불리는 가운데 탄핵정국 속 지역민들의 바닥민심이 어떻게 표출될지 관심을 모은다. 이번 재·보궐에는 충남 아산시장을 포함해 기초단체장 5명, 충남·대전 등 광역의원 8명, 기초의원 9명, 교육감(부산) 1명 등 23명을 선출한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을 놓고 여야 간 진영 대결이 극심해지면서 이번 재·보궐 선거전은 탄핵 이슈가 주를 이뤘다. 재·보궐을 앞..

‘전원일치 의견’이면 이유 요지 먼저 설명한 후 마지막에 ‘주문’
‘전원일치 의견’이면 이유 요지 먼저 설명한 후 마지막에 ‘주문’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과 관련, 헌법재판관들의 의견이 ‘전원일치’이면 이유의 요지를 먼저 설명한 후 마지막에 ‘주문’을 낭독한다. 헌법재판소의 실무지침서인 ‘헌법재판 실무제요’ 명시된 선고 절차다. 재판관들의 의견이 엇갈리면 주문 먼저 읽은 후에 다수와 소수 의견을 설명하는 게 관례지만, 선고 순서는 전적으로 재판부의 재량에 달려있어 바뀔 수 있다. 선고 기일을 4일로 지정하면서 평결 내용의 보안을 위해 선고 전날인 3일 오후 또는 선고 당일 최종 평결, 즉 주문을 확정할 가능성이 크다. 평결은 주심인 정형식 재판관이 의견을..

한국소호은행 컨소시엄 공식 첫 걸음…대전지역 금융 기반 기대
한국소호은행 컨소시엄 공식 첫 걸음…대전지역 금융 기반 기대

제4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추진하는 한국소호은행 컨소시엄(이하 소호은행)이 1일 기자회견을 열고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했다. 전국 최초의 소상공인 전문은행 역할을 지향하는 소호은행은 향후 대전에 본사를 둔 채 충청권 지방은행의 역할을 일부 수행하며 지역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소호은행은 이날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소상공인 맞춤형 금융서비스 계획을 발표했다. 컨소시엄을 이끄는 김동호 한국신용데이터(KCD) 대표는 "대한민국 사업장의 절반 이상이 소상공인, 대한민국 경제 활동 인구의 4분의 1이..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 사랑의 재활용 나눔장터 ‘북적북적’ 사랑의 재활용 나눔장터 ‘북적북적’

  • 재·보궐선거 개표소 설치 재·보궐선거 개표소 설치

  • 3색의 봄 3색의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