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종범 교수 |
80년대 초 필자가 의과대학을 진학할 때도 소위 잘 먹고 잘 살려고, 또 성적이 되니까 굳이 안정적 생활이 보장되는 의사가 되는 길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 세태처럼 의과대학 쏠림 현상이 심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과거 80년대 의대는 인기 진학과의 반열에 당당히 한자리를 차지했으나 이과계통에서는 전자공학과, 건축학과 방위산업, 금속공학과를 비롯해 소위 유수한 대학교 자연과학 계통 등도 상당한 인기 과였다. 오히려 탑5 의과대학 외의 다른 의대보다는 입학 점수도 높고 지망학생들도 적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대학병원 전문의로 남아 인턴·레지던트 교육을 해오다 보니 예전보다 조금은 더 우수한 인력들이 대부분 의대를 진학해 의사가 되고 또한 전문의가 되어가는 과정을 밟고 있는 현실을 마주한다.
지금은 제도가 거의 없어졌지만 '의학전문대학원'이라고 하는 기형적인 의과대학 교육과정이 존재했다. 극단적일지는 모르지만 예를 들면 기초과학의 학부를 나온 우수 인력이 연구나 기초과학에 몸담지 않고 있으며, 우수한 유학파들도 다시 국내로 리턴해 의전에 진학하고, 다른 과를 전공한 우수한 학사들이 다시 의전을 목표로 재수를 택하는 시절도 있었던 것이 최근이었다. 그야말로 의사 만능 최고주의가 됐다.
그러나 우수한 인력의 의대 쏠림현상이 바람직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듯이 이과계통의 균형발전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당장 어렵더라도 참고 견디면 의사와 같은 보상이나 만족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직업적 환경, 즉 좋은 일자리 창출이 먼저 이뤄져야 이러한 쏠림현상도 서서히 제자리를 찾을 것임은 자명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돼서도 전문 과목을 정하는 레지던트 과정의 지망실태 역시 소위 인기 과에 많은 의사가 지원하는 현상이 점점 더 두드러져 가고 있다. 그런 과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 생각된다.
소위 3D과(흉부심장혈관외과, 비뇨기과, 일반외과 등)라는 위험하고 난이도가 높아 중증환자를 많이 상대하는 과, 레지던트 수련과정이 고단하고 나중에 전문의가 돼서도 개업이 어려워 경제적 만족감이 상대적으로 낮은 과들은 이미 젊은 의사들의 눈 밖에 난지 오래된 일이다.
이런 과들은 전공의 부족사태에 직면해 전문의들이 전공의를 마치 애지중지 업어 키우는 듯한 우스꽝스러운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사명감으로 3D과를 지원하기를 바라기는 쉽지 않다. 꼭 필요한 생명을 다루는 의사들이 필요하고 그런 의사들의 고충과 애환을 잘 어루만지고 보상해주는 제도가 시급히 필요하다. 위험도의 인센티브 제도나 보험 체계 안으로의 반영 등 사기진작을 위한 당근책이 지금보다 더 필요할 것이다.
앞으로 공공의과대학, 사이버 진료, 원격진료 등의 변화가 있을 것이고 의학계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은 자명하다. AI 같은 인공지능의 발전 등도 일정 부분 의사의 일을 대치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과연 이러할 진데 의사의 품귀현상이나 우대받는 현실은 서서히 정상을 찾아갈 것이라 예상된다.
이런 특정 직군으로의 우수 인력 쏠림현상은 21세기 후반을 준비하는 국가적 차원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고쳐 나가야 할 것이다. 아마 시장논리가 여기에도 적용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의대 졸업생들에게 적도의 성자 슈바이처, 울지마 톤즈의 김태석 의사·신부님 같은 분들의 숭고한 봉사 정신은 잊은지 오래라고 얘기하면 편견일까?
늘어가는 의료분쟁과 의사들을 향한 불신의 시선 등이 환자권리 보호라는 어찌 보면 약간의 포퓰리즘 하에 수술실의 CCTV 의무적 설치 같은 섣부른 의료정책 등이 의료계를 발가벗기려고 하는데 이러한 행위는 과연 순기능만 있을 것인가 생각해 볼 일이다. 후학이 그립다. 영재는 아닐지라도 후학을 키워 편안한 마음으로 정년을 맞이하고 싶다. /권종범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심혈관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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