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칼럼] 도시의 추억

  • 오피니언
  • 문화人 칼럼

[문화人칼럼] 도시의 추억

백남우 대전향토문화연구회장

  • 승인 2022-01-19 17:04
  • 신문게재 2022-01-20 19면
  • 한세화 기자한세화 기자
백남우=대전향토문화연구회장
백남우 대전향토문화연구회장
대전에서 오래 살던 사람들은 대부분 '서대전삼거리', '대흥동로타리', '열두공굴' 같은 단어를 알고 있다. 대전이 교통의 도시인지라 전부 교통과 관련된 말들이다. 지금의 서대전네거리는 원래 삼거리였는데, 원도심에서 도청을 지나 용두동고개를 넘어 논산과 유성으로 가는 중요한 길목이다. '대흥동로타리'는 지금의 대흥동네거리로 일제강점기 때 설계된 형태가 지금도 남아있다. 대전천 하류인 중촌동에는 대전천을 가르는 대전선(옛 호남선) 철도 교량인 대전천교가 있다. 대전 사람들은 이를 '열두공굴'이라 불렀다. 콘크리트 교각이 열두 개인 까닭에서 유래한 것이다. 최근에는 노후 교량 구조개선 목적으로 하루아침에 교각과 상판이 완전히 철거돼 근대도시 대전의 철도구조물로써 의미와 가치를 상실했을뿐더러, 지역민들의 수많은 사연을 간직한 공동의 추억장소를 잃어버린 것이기도 하다.

가끔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해보곤 한다. 옛 충남도청에서 대전역을 바라보면 역 뒤편에 배경으로 보이는 산들이 있다. 이름 없는 이 산의 정상부근에는 옛 성터의 흔적이 있는데, 대전광역시 기념물 11호인 '능성'이다. 이곳은 대전 원도심의 중심축으로 대전광역시를 조망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어릴 적 이곳에 자주 올라서 대전 시내를 바라보곤 했다. 70~80년대 인적 드문 이곳에서 대전 시내를 바라보면 원도심을 제외한 모든 곳이 논과 밭, 야산으로 뒤덮인 푸르름의 연속이었고, 3대 하천이 흐르는 삼천동과 전민동 쪽으로 가을 황금벌판이 펼쳐진 모습을 볼 수 있던 곳이다. 요즘도 가끔 이곳에 올라와 대전시의 모습을 바라보는데, 희뿌연 미세먼지 속에서 도시 외곽으로 확장돼 성냥갑처럼 늘어선 고층 아파트 군락뿐이다. '우리가 꿈꿔왔던 도시의 모습이 과연 이런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한때 전국에서 가장 넓은 편에 속하던 대전역 광장이 지금은 어디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대전역 광장은 일제강점기 때 지역의 젊은이들이 징병과 징용, 위안부로 끌려갔던 이별의 장소였고, 1945년에는 광복의 기쁨에 시민들이 해방기념비를 세운 장소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때 전국에서 모여든 많은 피란민이 광장을 메웠으며, 격변기 시절엔 시민들의 모든 집회가, 매년 사월 초파일에는 연등 행렬의 시작을 알리던 곳이다. 어르신들에게는 역 광장의 나무 그늘에서 지나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기시던 장소였으며, 80년대 민주화운동의 뜨거운 함성이 들끓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의 대전역 광장을 생각하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낀다.

한밭종합운동장은 원래 대전공설운동장으로 불리던 곳이다. 1959년부터 사용하던 이곳은 한밭종합운동장으로 이름이 바뀌어 지금에 이르렀다. 하지만 63년간 대전시민과 함께했던 모든 사연을 뒤로하고 올해 3월 철거될 예정이다. 선거유세와 1964년 전국향토예비군창설이 이곳에서 이루어졌으며, 60년대에는 당시 국민학교 대항 체육대회와 70년대 전국소년체육대회, 고등학교 교련경연대회, 전국체전과 프로축구의 열기가 넘치던 이곳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보문산은 대전의 역사와 함께했던 시민들의 산으로 지역 학생들의 단골 소풍 장소이자 시민들의 유일한 휴식공간이었이다. 보문산 아쿠아리움 자리는 일제강점기에 방공호시설로 사용되다가 해방 후 석굴암으로 불리던 사찰이 있었다. 동굴 안에는 물이 차 있어 배를 타고 유람하는 시설로 유명했는데, 1974년부터 35년간 군사보호시설로 활용하던 동굴이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보문산 케이블카와 수영장, 놀이시설 등 모든 장소에 시민들의 추억이 깃들어있다. 옛 모양을 없애고 전혀 다른 형태로 변한 야외음악당과 보운대(전망대)는 찾을 때마다 낯설고 아쉽다. 최근에는 목조전망대를 설치하는 문제로 논란이 는 이 곳이 시민들의 정서와 추억을 충분히 반영돼 변화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도시는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한다. 도시를 기억하는 공통의 추억장소가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그 자리를 채우는 거대한 규모의 새로운 시설들이 과연 우리가 꿈꾸는 미래의 도시인지 자신에게 물어보자.


한세화 기자 kcjhsh99@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학대 마음 상처는 나았을까… 연명치료 아이 결국 무연고 장례
  2. 원금보장·고수익에 현혹…대전서도 투자리딩 사기 피해 잇달아 '주의'
  3. 김정겸 충남대 총장 "구성원 협의통해 글로컬 방향 제시… 통합은 긴 호흡으로 준비"
  4. [대전미술 아카이브] 1970년대 대전미술의 활동 '제22회 국전 대전 전시'
  5. 대통령실지역기자단, 홍철호 정무수석 ‘무례 발언’ 강력 비판
  1. 20년 새 달라진 교사들의 교직 인식… 스트레스 1위 '학생 위반행위, 학부모 항의·소란'
  2. [대전다문화] 헌혈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
  3. [사설] '출연연 정년 65세 연장법안' 처리돼야
  4. [대전다문화] 여러 나라의 전화 받을 때의 표현 알아보기
  5. [대전다문화] 달라서 좋아? 달라도 좋아!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시와 충남도가 행정구역 통합을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홍성현 충남도의회 의장은 21일 옛 충남도청사에서 대전시와 충남도를 통합한 '통합 지방자치단체'출범 추진을 위한 공동 선언문에 서명했다. 대전시와 충남도는 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 지방소멸 방지를 위해 충청권 행정구역 통합 추진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대를 갖고 뜻을 모아왔으며, 이번 공동 선언을 통해 통합 논의를 본격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공동 선언문을 통해 두 시·도는 통합 지방자치단체를 설치하기 위한 특별..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자영업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년퇴직을 앞두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는 소상공인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자영업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메뉴 등을 주제로 해야 성공한다는 법칙이 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두해 질리도록 파악하고 있어야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때문이다. 자영업은 포화상태인 레드오션으로 불린다. 그러나 위치와 입지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면 성공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에 중도일보는 자영업 시작의 첫 단추를 올바르게 끼울 수 있도록 대전의 주요 상권..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