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쿵 명대사 찾기-5] 책읽는 꼴찌와 일등, '그해 우리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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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쿵 명대사 찾기-5] 책읽는 꼴찌와 일등, '그해 우리는'(2)

심상협 / 문학평론가

  • 승인 2022-01-17 18:02
  • 수정 2022-01-17 18:03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그해우리는
드라마 '그해 우리는'
드라마 '그해 우리는'에는 원작 웹툰에 나오지 않는 고전 명작들이 스치듯 나온다. 3권 모두 '읽히지 않는 고전'이라 할 난독서들이다. 모두 전교 꼴찌 최웅(최우식 분)이 먼저 읽고 있고, 전교 1등 우등생 국연수(김다미 분)가 자신이 읽게 빨리 반납하라거나 먼저 읽으면 안되냐는 식이다. 첫 책은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연수 ; "너. 그 책 읽으려구? 글쎄, 너한텐 좀 어려운 책 같은데 괜찮을까? 니체의 방대한 철학사상을 이해하기가 쉽진 않을 텐데 말이야. 그러니까 이거 나 줄래? 내가 읽는 게 더 효율적일 거 같은데."

웅 ; "영혼회귀! '같은 우주가 무한히 처음으로 동일하게 돌아가는 것.' 동일한 것의 영원회귀 속에 우리는 현재라는 시간을 무한히 반복하며 살아간다는데 시간의 영원성에 대한 사유가 더 궁금해져서 다시 한번 읽어 보려고."

제7화 '캐치 미 이프 유 캔' 에필로그에서 연수의 꼴찌 주제에 감히 니체를 읽느냐는 비아냥과 웅의 대답이다. 문득 1화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의 다큐 촬영 시작 장면이 떠오른다. 두 번째 책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새가 지저귀는 신록 사이로 햇살이 비쳐들고 웅의 독백에 끼어 드는 연수.

웅 ; "그늘에 누워 있는 걸 제일 좋아해요. 살랑이는 바람,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 음 헤헤헤헤.(순진한 웃음)"

연수 ; "꼴값 떤다."

웅 ; "좀 비켜줄래"

연수 ; "이 책 빨리 읽고 반납 좀 하지."

웅이가 책을 건네는 척 머리 아래 베고 누워 있자 연수가 책을 빼내 채뜨린다. 이 소설을 읽으신 독자 분들은 아시겠지만 니체의 '영원회귀'로 시작한다.

"우리 인생의 매순간이 무한히 반복되어야만 한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혔듯 영원성에 못박힌 꼴이 될 것이다. 이런 발상은 잔혹하다. 영원한 회기의 세상에서는 몸짓 하나하나가 견딜 수 없는 책임의 짐을 떠맡는다. 바로 그 때문에 니체는 영원 회귀의 사상은 가장 무거운 짐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영원한 회귀가 가장 무거운 짐이라면, 이를 배경으로 거느린 우리 삶은 찬란한 가벼움 속에서 그 자태를 드러낸다."

-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역,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밀란 쿤데라 전집8), 민음사, 2011, 12p

대여섯 살에 버려져 입양된 웅, 그리고 할머니를 모시고 삼촌 빚까지 갚아가며 평범하게 살고만 싶은 소녀가장 연수. 두 주인공이 내면에 간직한 고통과 삶의 무게를 티내지 않고 살려고 애쓰는 모습은 청순하고도 발랄하게, '찬란한 가벼움 속에서 그 자태를 드러내듯이' 그려진다. 홀어머니에게조차 버려져 아픔을 견디며 사는 김지웅이나 악플과 외로움 속 엔제이도 마찬가지다.

세 번째 책은 결말로 달려가는 12화 '비긴 어게인' 도입부에 반짝 스쳐 지나가는 『안나 카레리나』. "일찍 일어나는 새는 더 일찍 피곤해진 텐데요"라며 연수에게 불만인 웅이, "잠은 죽어서도 잘 수 있는데요. 분명히 얘는 평생 이렇게 나태하게 살 거예요"라며 못마땅해 하는 연수. 나무 아래 웅이가 읽고 있는 책을 연수가 또 채뜨려 간다. 이 장면을 다시 돌려 책 이름을 확인하면서 문득 저 유명한 첫 문장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어쩌면 '그해 우리는'은 가족으로부터 버림 받은 우리 아이들이 독서와도 같이 스스로를 치유하면서 공감과 동행의 '가족'과도 같은 세계로 나아가는 꿈을 전하고 싶은지 모른다. '그해 우리는'에서 웅이를 입양해 따뜻이 기르며 연수와 지웅까지 따뜻이 감싸 보듬어 기르듯이. 웅이 부모가 늘 챙겨주는 '밥', 또 갈등의 순간마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며 반복되는 '밥'은 가장 따뜻하지만 오늘 우리가 잃어가는 가족의 상징이 아닐까.

심상협 / 문학평론가

심상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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