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종학 교수 |
대학에 입학하려는 학생들도 대학에 들어가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학창생활을 보람 있게 할 것인지에 관한 궁리가 아니라, 오직 좀 더 평판이 좋다는 대학으로, 1%라도 취업 등에 유리하다고 소문난 전공과 학과로 갈아타기 위해 온갖 머리를 굴리는 시기이다.
학령인구가 이미 대학 정원을 밑돌은 지 오래고, 벚꽃 피는 순서로 대학이 문을 닫는다는 속설이 상식이 되어 인구에 회자가 되기 시작한 지도 일정 세월이 지났기에 새삼 놀랄 일도 아니리라. 더군다나 지난해부터는 지역의 거점국립대학들도 신입생을 채우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떠돌고 있으니 딱히 할 말도 없다.
신입생 입장에서도 가중되는 취업난 등으로 대학생활의 시작부터 불안이 쌓일 것이기에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아니 오히려 충분히 공감 가고, 교수로서 이를 속 시원히 해결해주지 못하는 나약함에 좌절감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할지라도 이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러한 모습이 21세기 우리 대학을 둘러싼 풍경이라면, 우리는 태양이 가려진 잿빛 하늘 아래 있는 것이요, 희망을 반쯤은 잃어버린 우울한 사회일 뿐이다. 그래도 우리가 걱정할 주제는 어떻게 하면 대학을 발전시키고, 이를 통하여 우리 사회를 더 진일보시킬 것인가로 되어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 할 것인가? 누가 뭐라 할지라도 대학발전의 핵심 요소는 우수 학생의 유치와 탁월한 연구와 교육 능력을 갖춘 교수진의 구성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수 학생 유치를 위해서는 대학들이 다양한 연구와 실험을 해왔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조금씩 진전시켜온 것이 사실이다. 아니 최소한 고민의 시간만큼은 가져왔다.
이에 비하여 훌륭한 교수진을 갖추기 위해서 대학들은 과연 어떠한 노력을 경주해 왔는지 잘 모르겠다. 필자의 경험에 기대어 본다면 과거나 지금이나 교수 채용 시스템에서 전혀 개선이 이루어져 오지 않았다. 특히 국립대학 교수 채용 시스템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국립대학에서 교수를 초빙한다는 것은 우수 교육자의 확보라는 의미 이상의 그 무엇이 있다. 그것은 바로 국립대학 교수라는 신분은 교육자이자 고위직 공무원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채용과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이 그 어느 직보다 더 높이 요구되는 영역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몇몇, 아니 어쩌면 많은 국립대학에서는 지금도 기존 교수들, 그중에서도 소위 주류라고 행세하는 자들의 담합으로 사실상 채용자를 결정해 놓고 형식적 심사절차를 진행하여 채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자기들보다 우수한 교수를 모실 생각이 아니라 역량이 부족해 자신들의 지위를 넘보지 못할 것으로 보이는 자를 채용한 후 그 대가로 입사 후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따라줄 자 위주로 채용한다면 과장일까? 대학 내에서의 그 알량한 지위 보전과 기득권 유지만이 채용의 중요한 기준으로 되어 있는 것이 현 모습이라면 지나친 염세적 사고의 결과물일까? 고위 공무원직이 아니라 할지라도 어느 공적 영역에서 인재를 이렇게 자의적으로, 사적 인연에 기대어 뽑는단 말인가?
우리는 지난 수십여 년간 많은 영역에서 괄목할 성장을 이루며 대한민국을 선진국 목전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대학만은 아직도 세계 수준에서 가장 뒤떨어져 있다. 우리가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온 힘을 쏟아야 할 대목이다. 그러나 국립대학에서의 교수 채용 실태를 유지하는 한 세계적 수준으로의 대학 육성은 꿈속에서도 이룰 수 없는 연목구어일 뿐이다. 교수 채용 시스템의 선진화를 위하여 대학과 교육 당국, 아니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이대로의 모습은 너무도 부끄럽고 한심하지 않은가? /손종학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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