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아빠 말구."
"뭐?"
"진짜 아빠가… (잠시 침묵)… 놀린 거 맞지. 그렇게 어린 애한테 여기 누워서 저 꼭대기 층까지 세어 보라구 했으니까. 숫자두 잘 몰라 가지구 하나 둘만 세다가 일어났던 것 같애. 그랬더니 없었어. 아빠가… 웃기지? 세상에 그렇게 버리는 게 어딨어?"
요즘 넷플릭스 1위 SBS 11화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에필로그에 나오는 최웅(최우식 분)과 국연수(김다미 분)의 대화다.
할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삼촌 빚까지 갚아야 했고, 알바와 장학금으로 대학을 졸업하곤 빨리 정규직이 되어 꼬박꼬박 월급 받아 할머니가 일 안하게 해드리는 것이 꿈인 소녀가장(?) 국연수. 그에 비해 부모님이 음식점 일로 바빠 혼자 놀 때가 많았을 뿐 낮에는 햇빛 아래 누워 있고, 밤에는 등불 아래 누워있는 게 꿈인 금수저로만 알았던 최웅. 그런 최웅이 국연수에게 자신이 버려졌던 대여섯 살 적 숨겨온 비밀을 고백한다.
'그해 우리는'의 감동은 다큐 촬영 시점의 인터뷰라는 장치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말하는 독백, 그리고 말하지 못하는 속마음을 방백 형식으로 전달하는 화법에서 비롯된다. 때론 제3의 나레이터가 등장해 연수와 웅이에게 몰입됐던 시청자들을 빼내서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게도 한다.
2011년 전교 일등 국연수와 267명 전교생 꼴찌 최웅이 다큐멘터리를 찍는 장면으로 시작해 아옹다옹하다 이별하고 다시 만나 알콩달콩하기까지 10년의 시간. 두 청년의 풍경 속엔 절친 최웅의 연인 국연수에게 말도 못 꺼내며 계획까지 세워 거리두기를 하는 김지웅, 최웅의 진실한 모습에 빠져 좋아하게 된 아이돌 스타 엔제이. 이들이 끼어들면서 삼각관계의 통속적 흥미까지 더한다. 김지웅은 웅과 연수 못지 않게 불행하다. 아버지 없이 홀부모인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열등감을 안고 살아가는 김지웅. 아이돌 스타 엔제이도 아무도 모르는 악플과 외로움에 상처받으며 눈물을 삼키는 불행한 청년의 초상이다.
누군가에게나 아름다웠을 열아홉부터 스물아홉까지의 청춘. '그해 우리는'은 그저 '추억은 아름다워'라는 식의 재미로 보아도 좋다. 그러나 그 수면 아래 차갑고 어두운 현실에서 고통 받는 청년들의 열등감과 상실의 아픔이 숨어 있다.
잠시 눈 감고 한번쯤 "드라마 속 현실에 비추어 당신들이 사는 현실은 살 만한가?" 물어보자. 부모에게, 어머니에게 버림 받은 우리 아이들. 그 아이들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니체의 '짜라투스투라'를 읽으며 사교육 없이 전교 1등을 하고 명문대에 진학하며, 성적은 꼴찌이지만 철학과 문학 속에서 스스로의 아픔을 치유하면서 건물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로 성공하는 꿈.
'그해 우리는' 11화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는 사람은 외면하고 건물만 그리는 최웅이 건물 층수를 세다가 버려진 아픈 상처의 감옥에서 스스로 걸어나와 국연수에게 고백하는 대사로 눈물샘을 툭 터뜨렸다.
자, 다음 편 예고에 나오는 장 페라(Jean Ferrat) 교수의 초청 문서는 어떤 전개의 실마리일까? 15회 종영으로 내닫는 '그해 우리는' 심쿵 명대사 찾기는 다음 주로 이어간다.
심상협 / 문학평론가
심상협 / 문학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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