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용운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KSTAR연구본부 책임연구원 |
흔히 온도를 뜨겁고 차가운 정도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엄밀히는 열전도도에 가깝다. 아무리 온도가 낮은 물질이라도 열전도도가 영이라면 만져도 전혀 차갑지 않을 것이다. 바람이 불면 체감 온도가 떨어지는 것도 그래서다. 공기가 피부에서 열을 더 쉽게 빼앗기 때문에 기온이 같아도 체감 온도는 낮아진다. 이러한 온도를 숫자로 표시하려면 변하지 않는 기준점이 필요하다. 셀시우스는 1기압에서 물의 어는점과 끓는점을 각각 0도와 100도로 하여 온도를 정의했다. 우리가 주로 쓰는 섭씨온도다. 파렌하이트는 얼음, 물, 염화암모늄 혼합물의 온도를 0도, 체온을 96도로 하여 화씨온도를 정의하였는데 이렇게 복잡한 기준을 만든 것은 당시 북유럽의 겨울 기온이 음수로 표현되는 게 싫어서라는 설이 유력하다. 섭씨와 화씨라는 말이 각각 셀시우스와 파렌하이트의 중국어 음차인 섭이수사와 화륜해특에서 유래했다는 것도 재미있다.
이처럼 실생활과 밀접했던 온도의 정의는 과학이 발전하며 달라졌다. 과거에는 전하를 지닌 전자가 이동하며 전기력을 만들어 내듯 열을 지닌 열소가 이동하며 열을 전달한다고 믿었다. 이후 열은 별도의 입자가 아니라 에너지가 전달되는 방식이며 자세히 살펴보면 그 근원은 구성 입자들의 운동에너지임이 밝혀졌다. 우리가 느끼는 뜨거움은 빠르게 움직이는 입자들이 우리에게 부딪히며 전달하는 에너지인 셈이다. 온도가 100도인 물 분자는 초속 400미터 정도로 움직인다. 이것도 빨라 보이지만 전기력을 이용하면 입자를 훨씬 더 빠르게 만들어 줄 수 있다. 정지해 있는 전자에 1볼트만 걸어줘도 속력이 무려 초속 400㎞로 증가한다. 이 에너지를 1전자볼트라고 표현한다. 구성 입자들의 평균적인 에너지가 1전자볼트라면 온도는 약 1만도가 된다. 흔히 쓰는 건전지 하나가 5볼트인데 1볼트에 이런 엄청난 힘이 숨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것이다. 다행히 우리 주변의 물질들은 대부분 전기적으로 중성이고 전하를 띠더라도 양전하와 음전하가 뒤섞여 있어서 전기의 힘은 거의 다 상쇄된다.
입자가 핵융합반응을 원활하게 일으키려면 대략 1만 전자볼트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여기서 핵융합에 1억도가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정도 되면 입자의 속도는 점점 광속에 가까워진다. 가속기는 입자의 에너지를 6조 전자볼트까지 높일 수 있으나 입자 하나를 가속하는 것이니 뜨겁고 차갑다는 식으로 온도를 따질 수 없다. 그럼 1억도의 플라즈마는 얼마나 뜨거울까. 같은 온도라도 입자의 개수가 적으면 그만큼 덜 뜨겁다. 끓는 물에 손을 넣으면 바로 데지만 수증기는 잠시 버틸 수 있다. 물이 수증기로 변하며 단위 부피당 입자 개수가 1700분의 일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핵융합로 내에서는 우리가 들이마시는 공기에 비해 입자의 개수가 만분의 일 정도다. 그러니 열전도도로 따진다면 체감 온도는 대략 1만도의 공기 정도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강펀치로 한 대 맞는 것과 약하게 여러 번 맞는 건 다르니 정확한 비교는 아니다. 그래도 1억도라는 온도를 체감하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남용운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KSTAR연구본부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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