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열 수필가 |
사물만 그런 게 아니라 사람 사이의 관계에도 이 법칙이 엇비슷하게 작용하는 듯하다. 인간관계에서는 서로의 거리에 따라 가깝고 먼 마음의 상태가 정해진다. 마음의 거리에는 처세에 따른 권력의 거리, 남녀 사이 애정의 거리, 친구 사이 우정의 거리, 가족 간의 애증의 거리 등 다양한 유형의 거리가 있다. 사람 사이의 인연은 서로의 거리를 어떻게 유지하느냐에 달려있을 것이다. 현악기의 줄들이 적당한 거리에서 조율되어야 아름다운 선율이 나오듯, 사회 구성원들의 상호작용하는 힘으로 다양한 삶의 무늬가 짜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람마다 살아오면서 서로의 가깝고 먼 심리적 거리를 재는 자기만의 방식이 있다. 이는 다차원방정식과 같다. 거기에는 세상을 살면서 터득한 인생철학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 식을 풀어 살맛 나는 인생길을 가기 위해서는 과거, 현재, 미래까지 고려된 많은 요소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저 사람이 저럴 리가 없는데 실망하거나 애꿎게 그 사람의 인격을 탓하기도 한다.
누구나 자기만의 프리즘으로 바라보기에 세상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지만 대부분 상식적인 바탕 위에서 굴러간다.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많은 어긋남은 서로의 거리를 재는 방정식의 변수들, 즉 의리와 이해에 대한 가중치 배분이 서로 달라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살다 보면 생각지도 못하게 그 사람의 본심을 읽게 되는 일이 있다. 평소 살갑다고 느낀 사람한테서 서운한 마음을 느끼는 순간이다. 내가 많이 주어 기대했는데 적게 받았다고 생각하기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겠는가. 즉 바라보는 기대치가 서로 다른 것이다. 이처럼 거리를 재는 방식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 아니 앞으로 살아갈 인생까지 통째로 담겨있는 듯하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면 주관적 감정에 휘둘려 쩔쩔매기보다 객관적으로 거리의 척도를 재는 방식을 살펴보아야 한다. 인간관계에 얽히지 않도록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방법은 타인의 마음 씀씀이에 휘둘리지 않는 자신만의 '거리 척도법'을 만드는 일이다.
사람 사이 거리의 척도를 알면 그 사람의 뒷모습을 읽을 수 있다. 세상은 숨 가쁘게 돌아가지만 그럴수록 누군가와의 거리의 설정은 더욱 중요해진다. 가까운 인연을 잃지 않도록 서운해하지 않을 적당한 거리를 찾아야 한다. 거리의 척도법에는 한 사람의 가치관이 녹아 있겠지만 세월 따라 변해간다. 그러므로 인생의 단계마다 척도법도 걸맞게 조정되어야 한다.
유튜브, 컴퓨터 운영체제, 카카오톡 등 수시로 업데이트를 요구하는 메시지가 뜬다. 세상의 속도가 그만큼 빨라지고 불확실성이 많다는 징표이다. 마찬가지로 복잡한 인생의 단계에서도 인간관계에 대한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이왕이면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쪽으로 업데이트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 세상을 욕계라고 한다. 욕망이나 욕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을 비유한 말일 테다. 우리 마음 곳곳에 희망이란 이름으로 너절너절 붙어 있는 욕심을 줄여보면 어떨까. 욕망이란 끝이 없기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지포스 왕의 바위'처럼 이룰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맹자 진심편'에 '마음 수양은 욕심을 줄이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는 말이 있다. 욕심의 크기를 줄일수록 사람 관계에서 기대하는 거리는 적당한 거리로 조율되어 좀 더 조화로운 세상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임인년 새해가 밝았다. 코로나로 멀어진 공간적 거리가 다시 숨소리가 들리는 일상의 거리로 회복되었으면. 세대·성별·이념의 갈등으로 우리 사이에 크레바스처럼 벌어진 심리적 거리가 다시 대화 가능한 거리로 돌아갔으면. 거리의 척도법을 업데이트하여 함께 살고 싶은 새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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