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홍반장' 포스터 |
2004년 개봉 영화 '홍반장'의 홍두식(김주혁 분)과 윤혜진(엄정화 분)이 밤바다를 바라보며 키스에 이르는 장면이다. 일당 5만원의 동네 반장과 치과의사라는 신분차를 넘어 연인이 된다면? 언제나 평범한 청년들의 꿈이다.
'언덕위에 올려진 배'는 홍반장 내면의 상징이다.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마을 어르신들 손에 자란 그에게 사랑하면 모두 떠난다는 아픈 상처의 상징. 그래서 그는 혜진을 사랑하면 혹시 떠나게 될까 마음을 숨긴다. 바다로 떠날까봐 언덕 위에 올려놓은 배처럼.
혜진은 수시로 성추행과 성폭력을 당한다. 그때마다 홍반장은 정의로운 흑기사가 되어준다. 17년전 성인지 실태로는 여성 누구나에게 다반사였을 성폭력을 심판하는 정의를 소망하는 꿈.
둘은 잠시 엇갈리지만 함께 느꼈던 공감 속에 다시 그리움으로 달려간다. 마음과는 달리 결별을 고하는 혜진에게 홍반장은 "우리 술 한잔 하자"며 그녀가 좋아하는 와인을 꺼내 돌아선다. 뒤로 스르르 벽장 문이 열리고 가득한 와인들.
"네가 불쑥 찾아와서 술 한잔 먹고 싶다 그러면 어떡하나. 가고 싶지 않게끔 해주고 싶어서."
홍반장과 혜진은 각자 트라우마와 고정관념을 넘어서며 앤딩 자막이 올라간다. 지난 해 tvN드라마 '갯마을 차차자'로 리메이크된 2004년 개봉 영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 홍반장에는 IMF 이후 최고의 청년실업률 속에 고통받던 '이태백' 시대를 당당하게 살아가는 청년 백수의 욕망도 담겨 있다.
지난 1월 7일은 김광석 가인이 세상을 떠난 26주기였다. 2004년보다 더한 취업난과 주거난에 사랑조차 사치가 되어 '어제 보다 커진 방 안'에서 이룰 수 없는 연인의 이름을 썼다 지우는 청년들의 꿈과 욕망은 2004년보다 더 열악하기만 하다.
심상협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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