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랄 때 같이 자란 친구를 불알친구라 한다. 발가벗고 놀던 사이로 흉허물 없이 지내는 관계이다. 죽마고우(竹馬故友)라고도 한다. 대나무 말을 함께 타고 논 사이이니 어려서부터 사귐이 있었다는 말이다.
객지친구 10년이라는 말이 있다. 십년이내는 서로 말을 튼다는 뜻이다. 격의 없이 지낸다는 말이다. 성장기에는 일 년이 상당히 길게 느껴지지만, 나이 먹으면서 보자 하니 그 차이가 점점 좁혀진다. 좁혀 진다고 마구 대하자는 것은 아니며, 상호 존중하지 말자는 것은 더욱 아니다.
SNS 상에서는 누구나 친구로 한다. 아예 한정이 없다. 집안 어른이나 스승 같은 경우, 처음엔 관계가 몹시 불편하거나 계면쩍었다. 따지고 보면 누구나 격의 없이 대화하자는 '친구' 본래 의미 그대로 아닌가? 남녀노소가 함께 어울리고 소통하는 아름다운 공간이다.
우리말은 존대와 하대가 따로 있다. 소중한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호칭만큼은 상호 존중을 표했으면 한다. 일상에서도 친구를 대접하여 서로 '형' '대형'이라 하거나 이름을 앞에 넣어 함께 부르기도 한다. 요즈음엔 여자 후배가 남자 선배를 부를 때 사용하기도 한다. 상당한 나이 차가 있음에도 '형'이라 호칭하는 경우가 있다. 나이 많은 사람 모두 '형'이라 불러도 되는 것일까? 이 역시 일정한 규정은 없다. 10년 이내 차이는 형이라 부르더라도 10년 이상은 '형님'이라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른바 동년배라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20년 이상 차이가 나면 '형님'이라 불러도 예의가 아니다. 세대 차가 있기 때문이다. 직함이나 선배, 선생, 어른, 어르신 등 경우에 맞는 호칭을 사용하면 좋을 듯하다.
SNS에서는 친한 친구를 따로 설정하기도 한다. 더 가깝다는 말이다. 친구에는 어떠한 유형이 있을까? 주로 한자말이지만, 떠오르는 대로 나열해보자.
죽고 못 사는 사이라는 말이 있다. 한시도 떨어져 살지 못한다는 말이다. 교칠지교(膠漆之交), 아교와 옻칠 같이 동반자 관계이다. 의존하는 관계는 수어지교(水魚之交)라 한다. 물고기는 물을 떠나 살 수 없다.
서로 격의 없는 사이, 허물없는 벗은 막역지우(莫逆之友)라 부른다. 서로 마음 터놓고 지낸다는 사이는 간담상조(肝膽相照)라 이른다. 간과 쓸개가 서로 마주보고 있음에서 유래 했다. 영지와 난초의 향기 같은 사이도 있다. 지란지교(芝蘭之交)이다.
서로 알아주는 것이 친구다. 자신을 알아주는 친구를 지기지우(知己之友)라 한다. 지음지기(知音知己)라고도 한다. 백아(伯牙)와 종자기(鍾子期) 사이의 고사에서 유래했다. 자기의 거문고 연주를 알아주는 종자기가 죽자 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었다. 백아절현(伯牙絶鉉)도 같은 말로, 자신의 일마저 접으며 벗의 죽음을 진정 슬퍼하였다.
믿음이 없으면 당연히 친구가 될 수 없다. 신라시대 화랑의 세속오계(世俗五戒)에는 서로 믿음으로 사귀라고 가르친다. 교우이신(交友以信)이다. 오륜에서는 붕우유신(朋友有信)이라 하였다. 친구 사이 도리는 믿음에 있다는 말이다.
믿음과 유사한 뜻으로 서로 변하지 않는 것을 최선으로 삼기도 한다. 쇠와 돌처럼 단단한 사귐은 금석지교(金石之交), 매우 정의로운 관계는 단금지교(斷金之交), 쇠처럼 단단하고 난초처럼 향기는 사이는 금란지교(金蘭之交)라 한다.
서로 도와주는 관계를 이르는 사이도 있다.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의 사귐에서 유래한 관포지교(管鮑之交)가 그것이다. 서로 이해하고 이끌어 준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죽고 살기를 함께 하는 친구의 사귐은 문경지교(刎頸之交)라 한다. 친구 위해 자신의 목도 내어 줄 수 있다.
진정한 친구는 어려울 때 알 수 있다는 말도 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떠나지 않고 돕는 친구다. 포의지교(布衣之交), 어려운 상황에서 다가오는 사람도 진정한 친구다.
어떠한 친구가 가장 좋은 친구일까? 하나라도 그런 친구가 있는가? 예전엔 친구 따라 강남 간다 하여, 좋은 친구 사귀라 가르치기도 하였다. 이제, 좋은 벗을 찾기보다 자신이 좋은 벗이 되는 것이 먼저인 시대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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