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톡] 울컥하여 밥술이 안 떠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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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톡] 울컥하여 밥술이 안 떠집니다

솔향 남상선 / 수필가, 전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 승인 2022-01-07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4.15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던 제자 양홍규 선거 캠프 해단식이 있다 해서 참석했다가 오는 길이었다. 도중에 전화를 걸었다. 그 동안 알게 모르게 도움을 주시고, 고맙게 해주신 김종복 여사님께 드리는 감사인사였다.

"전화를 하려든 참인데 마침 잘 됐다며 지금 어디 계셔요?" 했다.

"선거 캠프 해단식이 있어 참여했다가 집 으로 가고 있는 중입니다" 했더니 "집에 도착할 시각이 몇 시 정도 될 것 같습니까?" 했다.

"왜 그러시는데요?" 반문했다.



"선생님께서 제자의 국회의원 출마에 선대의원장까지 하시느라 지치셨을 것 같아 닭 한 마리 사다 삶는 중입니다. 5시 반 안팎으로 방문할 테니 집에 계셔요" 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헌데, 염치가 없어 그냥 마음으로만 받겠습니다" 했다.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기에 그렇게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었다.

김종복 여사, 이 분은 천사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 사시는 분이었다. 장애인 관련 사회 봉사활동을 쉴 새 없이 하시는 분이었다. 장애인 의사소통 수화(手話)를 하시기 때문에 시간만 있으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봉사활동을 하시는 분이었다. 이따금씩 수익금이 생길 때는 장애인들을 위해 쓰라고 흔쾌히 쾌척(快擲)까지 하시는 분이었다. 뿐만이 아니라 미혼모가 낳은 사생아를 거둬들여 키워서 지금 군에 입대한 숫자만 해도 3, 4명이나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지상에 사는, 또 다른 천사가 아닐 수 없었다.

내가 이런 천사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천사를 알게 된 것은 4년 전의 일이었다. 무료한 생활을 달래 보려 하모니카를 배운다고 갈마동 마을금고 건물 위층에 있는 피아노 교습소를 찾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 천사는 그 때 거기에서 총무를 맡아보신 분이신데, 나는 사정으로 3개월 수강밖에 못하고 그만 두었다. 그 후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김종복 여사님이 교통사고로 우신정형외과에 입원해 있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하모니카 교습으로 사무실서 만날 때는 그냥 인사 정도 하고 지내는 사이였다. 친분 있는 관계도 아니고, 특별하게 아는 사이도 아니었다. 그냥 하모니카 교습 때문에 알게 된 분이었다.

하지만, 교통사고로 입원해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예사로 들리질 않았다. 병원으로 찾아뵙고 위문 인사라도 드리고 싶었다. 그래 홍삼드링크 1박스를 사가지고 병원으로 갔다. 날 보시더니 그렇게 미안해하고 고마워하셨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나는 너무나 벅찬 사랑을 많이 받게 되었다. 간헐적이지만 우리 집 아파트 출입문 문고리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만두에, 겉절이 배추김치며, 찹쌀 시루떡이며, 고추장 담근 것을 비롯하여 쇠고깃국 끓인 것을 비닐봉지에 담아 대롱대롱 매달아 놓은 것이 한 두 차례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수 차례였다.

오늘은 워낙 큰 닭 삶은 냄비를 그냥 걸어놓을 수 없었기 때문에 천사가 손수 쟁반에 삼계탕 냄비를 받쳐 든 채 문을 두드린 거였다. 아니, 뜨끈뜨끈하게 끓인 삼계탕 보약이 식을까봐 끓는 냄비를 들고 와서 문을 두드린 거였다. 극진한 정성과 사랑, 배려에 고개가 숙여지지 않을 수 없었다. 느꺼운 감사를 드린다. 내 이런 소중한 사랑을 받고 있으니 어찌 그 행복한 마음을 이루 다 표현할 수 있으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냄비를 열었다. 엄청나게 큰 닭이 내 몸보신을 위하여 누워 있었다. 강장제로 좋다는 그 크고 실한 대추며, 정성스레 껍질을 벗겨 익힌 굵직한 왕밤이 여러 톨 들어 있었다. 날 위하는 정성과 사랑이 이것만으로는 안 되겠던지, 그 허연, 통이 크고, 굵직한 인삼 여러 뿌리가 숭덩숭덩 썰린 채 삶은 닭 속에 뜨거워하고 있었다. 굵고 실한 인삼으로 보아 겉잡아 6년 근은 돼 보였다. 수저로 뒤적여 봤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몸보신에 좋다는 그 큰 전복이 다섯 마리씩이나 들어 있었다. 뜨끈뜨끈한 닭다리 한 쪽을 떼어내니, 보신용 능이버섯이 숨을 곳이 없었는지 얼굴을 내미는 거였다. 뜨거운 냄비엔 보신용 삼계탕이 들어 있는 게 아니라, 값어치로 환산할 수 없는 정성과 사랑이 무르녹아 숨 쉬고 있었다.

아니, 그들이 나에게 바치는 사랑싸움을 하느라 정신이 없는 것 같았다.

순간 나는 울컥하여 수저질을 못하고 있었다.

하늘이 내린, 지상에 살고 있는, 또 다른 천사가 날 울리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가족도 아닌 내가, 남편이나 아들딸들이 받아야 할 사랑을 독차지하는 황홀감에서 밥술이 떠지질 않았다.

사랑은,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가 행복해진다더니 그 얘기가 맞는 것 같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도, 만져볼 수 있는 것도 아닌, 오로지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거.'라 했는데 그런 아름다운 사랑을 바로 내가 받고 있다니 행복한 마음 견줄 데가 없었다.

아니, 그런 사랑을 받는 한 사람이 울보였던지, 울컥하여 밥술을 못 뜨고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하트를 그리고 있는, 그 뜨끈뜨끈한 삼계탕 냄비 !

몸보신에 좋다는, 그 실한 대추와 사랑이 둔갑된 인삼 몇 뿌리,

그것으로도 안 되겠다 싶었는지 전복과 능이버섯이 합세하여……

날 울컥하게 하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느꺼움으로 울컥하게 하는 천사가 어디 또 있으랴!

평생 보은(報恩)으로도 안 되는 느꺼운 감사와 고마움이었다.

인생소풍 끝나는 날까지 코팅해두고 새겨야 할 감사함이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천사의 뜨끈뜨끈한 삼계탕 냄비!

아무리 보고 또 바라봐도 배가 불러오는 사랑이었다.

바보인지 울보인지, 울컥하여 밥술이 안 떠집니다.

솔향 남상선 / 수필가, 전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남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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