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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게티이미지 뱅크 |
단군신화에도, 전래동화에도 호랑이는 등장한다. 한반도 땅 모양을 호랑이에 빗대기도 하고, 스스로를 '호랑이 민족'이라고 부른다.
88올림픽의 마스코트를 호랑이로 만들만큼 호랑이의 의미는 각별하다.
이렇게 남다른 대상이지만, 정작 우리가 호랑이를 볼 수 있는 곳은 동물원이다. 하지만 동물원 우리 속 호랑이는 우리가 그리고, 생각해온 용맹하고 매서운 존재가 아니다. 멍한 눈으로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 무기력한 거대한 몸뚱이일 뿐이다.
동물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동물원 존폐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야생 동물을 우리에 가둬놓고 전시하는 동물원을 둘러싼 비인도적 논란은 예전에도 있었지만, 코로나19로 방치된 민간 동물원 문제가 대두되면서 또다시 동물을 가둬놓고 구경하는 동물원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사실 호랑이로 대두된 동물 뿐 아니라 아쿠아리움에 갇힌 돌고래 등도 논란이 계속됐다.
사람의 지능에 육박하는 돌고래는 스스로가 갇혀 있는 것을 인지할 수 있어서 상당수가 수족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22년 현재 국내 수족관에 갇혀 있는 고래류는 22마리다. 환경 보호 단체들은 하루빨리 비인도적인 돌고래의 야생 방류를 촉구하고 있는 이유다.
동물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동물원 존폐 논란이 일고 있지만 불과 1세기 전 만해도 인간이 동물원에 전시되기도 했었다.
19세기 식민지 확장에 몰두했던 유럽 제국주의는 원주민 몇 명을 우리에 가둬놓던 전시에서 원주민 촌락에 가두고 이들의 삶을 구경거리로 만드는 인간 동물원 건설에 열을 올렸다.
그리고 슬프게도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인들도 일본 박람회에서 전시되기도 했었다.
동물을 전시하고 구경하는 일이 비 인도적이긴 하지만 사람을 전시하고 구경하는 일만큼 분노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하지만 과거에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던 노예제 역시 오늘날 들어서는 어떤가.
계급의식과 인종의식, 성별의식, 환경의식을 통합한 혁명적인 세계관을 가진 '벤저민 레이'의 일대기를 집필한 책이 출간됐다.
대부분의 유럽인들이 인간을 속박하는 일이 달과 별과 태양이 뜨는 것처럼 당연하다고 여겨지던 시대에 태어난 '벤저민 레이'(마커스 레디커 지음, 박지순 옮김, 갈무리 펴냄, 304쪽)대서양 노예무역상들의 해상 대학살을 고발한 인물이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노예제가 없는 세상을 상상했던 벤저민 레이는 동굴에 살며 스스로 옷을 만들어 입었고, 억압된 사람들이 강제로 동원돼 생산한 상품을 소비하기를 거부했다.
미국에서 노예폐지론이 나온 2세기 전부터 노예제 폐지를 주장한 벤저민 레이는 실제로 퀘이커교가 내부에서 노예제도를 폐지한 최초의 집단이 될 수 있도록 이끌었다. 저자는 17세기와 18세기에 가장 먼저 책을 출판했던 노예제 비평가들은 모두 변변찮은 출신의 노동자들이라며 이들의 평범하고 고된 노동생활의 노예들의 처지에 공감할 수 있는 토대가 됐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지구상의 가장 급진적인 사람으로 평가 받는 벤저민 레이를 통해 우리가 가진 기득권과 당연한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오희룡 기자 hu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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