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서(伍子胥)가 송(宋)나라에 도착한 직후에 송나라에서는 때마침 반란이 일어났으므로, 오자서는 태자 건(建)과 함께 다시 정(鄭)나라로 달아나게 된다. 정나라는 태자 건을 극진히 예우해주었으나, 작은 나라라서 힘이 되어 줄 수 없다고 생각한 태자는 진(晉)나라로 떠났다. 그 후 태자는 진나라와 정나라와의 정치적 사건에 휘말려 죽게 되고, 이에 오자서는 허둥지둥 오(吳)나라를 향해 달아난다.
추격자에게 쫓기던 오자서는 가까스로 강수(江水)에 이르러서 한 어부의 도움을 받아 겨우 위급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오자서는 강을 건너자마자 허리에 차고 있던 일백 금 정도의 값어치가 되는 칼을 끌러 어부에게 사례했다.
어부는 "초나라에 이런 방이 붙었소. 오자서를 잡는 사람에게는 속(粟/곡식)5만 섬과 집각(執珏/초나라 최고의 작위)의 벼슬을 준다고 말이오. 만일 내게 욕심이 있었다면 그런 일백 금의 칼이 문제겠소?"라고 말하며 칼을 받지 않고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을 한다. 그 광경을 본 오자서는 미안한 마음을 간직한 채 서둘러 오나라로 향했다.
드디어 오자서는 오(吳)나라에 들어섰고, 도성으로 가는 도중 걸식(乞食)과 병에 시달리는 등 심한 고생을 겪었다. 그러다 그는 오나라 장군인 공자(公子) 광(光)을 만났고, 그가 오나라 왕 요(僚)를 살해하고 왕 자리를 탈취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공자 광이 오나라의 새로운 왕이 되니 그가 바로 저 유명한 오나라 왕 합려(闔閭)이다. 그로인하여 오자서는 초나라 평왕에게 아버지와 형에 대한 원수를 갚을 준비를 할 수 있게 된다.
한편 5년 후 초나라는 평왕이 죽었다. 그리고 앞서 태자비가 될 뻔했다가 평왕의 비가 된 진나라 공주의 아들 진(軫)이 그 뒤를 이어 왕이 되었으니, 그가 곧 소왕(昭王)이다. 오왕 합려는 즉시 오자서를 불러들여 행인(行人/외교 고문)에 임명하고 함께 국사를 꾀했다.
그리고 오왕 합려는 즉위 3년 후에 군사를 일으켜 손무(孫武), 오자서, 백비 등과 함께 초나라를 쳐서 서(舒)땅을 함락시키고, 이번 기회에 초나라의 수도 영(?)까지 쳐들어가고 싶었으나, 백성들이 전쟁에 지쳐 있어 아직 때가 아니므로 좀 더 기다리자는 손무(孫武)의 의견에 따라 군사를 철수시켜 돌아왔다.
합려 6년(BC510), 이번에는 초나라의 군대가 오나라를 침공했다. 합려는 오자서에게 이를 맞아 싸우게 했다. 오자서는 초나라 군대를 크게 쳐부수고 초나라의 거소(居巢)를 점령했다.
그리고 3년 후 합려 9년(BC507), 오자서에게 드디어 복수의 기회가 왔다. 오왕 합려가 오자서, 손무 등과 함께 대대적으로 군사를 일으켜 초나라를 치기로 결정한 것이다. 합려는 먼저 초나라의 속국이면서도 초나라와 원한 관계가 깊은 당(唐), 채(蔡)나라와 연합하고, 국내의 모든 군사를 총동원하여 초나라로 쳐들어갔다.
오나라 군대는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가 초나라의 수도 영(?)을 점령했다. 초나라 소왕은 오군을 당하지 못하고 수도 영을 탈출하여 도망했다. 오자서는 소왕을 잡으려던 뜻을 이루지 못하자 대신 평왕의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꺼내 300번 매질을 한 것으로 복수를 대신하였다. 한편 오자서의 어릴 적 친구인 초의 대부 신포서(申包胥)가 산중으로 피난 중 사람을 보내 오자서에게 "그대의 복수는 너무 심하지 않은가. 사람의 수가 많으면 한 때는 하늘을 이길 수 있지만, 하늘이 한 번 결정을 내리면 또한 능히 사람을 깨뜨릴 수 있다고 들었다. 그대는 본래 평왕의 신하로서 한때는 그를 섬겼는데 이제 죽은 사람을 욕보였으니 이보다 더 천리(天理)에 어긋난 일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라고 말했고, 이에 오자서는 "부디 신포서에게 잘 전해라. 해는 지고 길은 멀기 때문에 갈팡질팡 걸어가며 앞뒤를 분간할 겨를이 없었다.(爲我謝申包胥曰, 吾日暮途遠, 吾故倒行而逆施之./위아사신포서왈 오일모도원 오고도행이역시지)"라고…….
오자서는 결국 자기가 뜻한 바를 이룩한다. 원수를 갚은 것이다. 비록 이미 죽은 왕의 시체에 채찍질을 하는 방법으로 복수를 대신했지만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우리는 이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오자서를 통해 자기가 가야할 목표가 분명한 사람은 결국 그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점과 그리고 공인(公人)으로서 개인의 목적달성을 위해 하늘의 뜻[天理]을 어기면 안 된다는 소중한 교훈을 얻게 된다.
2022년의 새해가 밝았다. 어둡고 희망이 없어 보이던 2021년을 돌아보면 모두가 힘들었던 한 해였다.
맹자는 양혜왕(梁惠王)과의 대화에서 "패권에 욕망이 있는 군주가 정치의 핵심정책을 부국강병(富國强兵)에 둔다면 이는 곧 부모는 추위에 떨며 굶어 죽게 되고, 형제 처자는 헤어져 흩어지게 된다(父母凍餓 兄弟妻子離散/부모동아 형제처자이산)"는 유세(遊說)를 한다.
"한 나라의 왕이 되어 백성을 돌보지 않는 왕은 왕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왕이 되고 결국은 백성들이 등을 돌려 민심을 잃게 되며, 민심을 잃으면 왕의 지위를 잃게 된다." 라고 유세하고 있다.
금년도 우리의 사명은 자명하다. 곧 올바른 국가 지도자를 선택하여 추락하는 국가 위상을 재정립하고, 풍요롭던 국민의 경제를 되살리며, 무질서한 사회적 환경을 바로세우고, 흩어진 민심을 결집시켜 당당히 세계를 향해 거침없이 전진하던 위대한 대한민국이 되도록 다시 한 번 총체적인 결집을 해야 한다.
머뭇거리고, 주위를 살필 시간조차 없다. 대한민국의 국운이 금년(2022년)에 달려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는 국가와 국민만을 생각하는 지도자를 뽑아야만 가능하다.
신령한 호랑이 힘까지 빌려서라도 한 번 일어서 보아야 할 것이다.
장상현/인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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