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진 부국장 |
대통령 선거는 물론 국회의원과 지방의 일꾼을 뽑는 선거 때마다 유독 충청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수도권이나 영남과 호남, 강원, 제주에서는 거의 등장하지 않아 생소한 단어이기도 하다.
대망론은 말 그대로 큰 꿈과 희망을 품는 것이고, 캐스팅보트는 선거의 승패를 좌우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의미다.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선거 때 충청의 지지를 얻으려는 정치세력, 즉 정당들이 충청을 치켜세우며 정략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대망론과 캐스팅보터라 할 수 있다.
2022년에는 3월 9일 대통령 선거와 6월 1일 지방선거가 있다. 사상 처음으로 같은 해 치러지는, 그야말로 대한민국 정치사를 새롭게 기록하는 역사적 사건이다. ‘충청대망론’은 과거 좌절의 역사는 과감히 잊고 바닥부터 시작해야 한다.
충청대망론이 정치적으로 태동한 건 작고한 김종필 전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한 세력이었다. 고 박정희와 김대중 정부에서 두 차례 국무총리를 지내고 최다선 국회의원(9선)을 지내는 등 정치사의 한 획을 그었지만, 끝내 대통령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이후에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이회창이 등장했고 이인제 역시 한때 주목받았지만 거기까지였다. 1988년 5월부터 2006년 3월까지 충남도지사를 지냈던 심대평 전 국민중심당 대표는 지역주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 서울대 총장을 지낸 정운찬 전 국무총리도 잠시 충청대망론의 꿈을 꾸었고,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역시 유력한 충청권 대권 주자로 떠올랐지만 정계에는 발도 디디지 못했다.
충청대망론에 가장 가깝게 다가섰던 주인공은 고(故) 이완구 전 국무총리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다. 하지만 이완구 전 국무총리는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사건으로 평생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고,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였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는 비서 성폭력 사건으로 충청의 자존심을 짓밟고 충청대망론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렸다. 대선을 앞둔 지금은 아버지의 고향이 충청이라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에 기댈 정도로 초라해졌다.
하지만 충청대망론 주자라는 타이틀은 가볍게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여야를 떠나 권력에 붙어 자리를 차지하거나 한몫 잡으려는 기득권 세력이 범접할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정략적인 측면을 떠나 올해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든 유일한 충청권 후보였던 양승조 충남도지사의 결단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충청대망론의 역사는 이렇게, 처음부터 다시 기록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캐스팅보터도 이제 접을 때다. 결정은 충청이 한다는 캐스팅보터라는 유혹에 더 이상 속아선 안 된다. 사실 충청이 캐스팅보터라는 말은 어찌 보면 정략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오랜 지역주의로 인해 굳어진 영·호남 중심의 양당 구조 속에서 충청을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해 선거 때만 잠깐 충청을 보듬는 수단에 불과했다. 충청은 그때마다 '우리가 결정한다’는 착각에 빠져 대선이나 총선 때마다 양쪽으로 오가며 줄타기를 해왔다.
이제 캐스팅보터 역할은 그만하고 선거의 주인공으로 올라서야 할 시점이다. 스스로는 살아가지 못하는 약자가 버티기만을 위해 펼치는 기생(寄生)의 전략처럼 선거 때마다 충청권의 할 일로 규정되는 캐스팅보터 역할은 과감히 거부하고 청산할 때다.
충청의 손으로 대한민국 운명을 직접 결정짓는 날이 속히 오지는 않을지라도, 충청도의 고유한 열망을 담은 고귀한 대망론의 꿈을 쉽게 타협해 잃어버려선 안 된다. 대선과 지방선거를 함께 치르는 2022년 임인년, 새롭게 태동하는 충청인의 진정한 대망론을 기대해본다.
윤희진 정치행정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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