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대망론, 그리고 청산해야 할 '캐스팅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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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대망론, 그리고 청산해야 할 '캐스팅보터'

윤희진 정치행정부장(부국장)

  • 승인 2022-01-04 10:59
  • 수정 2022-01-05 08:51
  • 윤희진 기자윤희진 기자
윤희진 부국장(2022년)
윤희진 부국장
대망론(大望論)과 캐스팅보터(Casting Voter).

대통령 선거는 물론 국회의원과 지방의 일꾼을 뽑는 선거 때마다 유독 충청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수도권이나 영남과 호남, 강원, 제주에서는 거의 등장하지 않아 생소한 단어이기도 하다.

대망론은 말 그대로 큰 꿈과 희망을 품는 것이고, 캐스팅보트는 선거의 승패를 좌우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의미다.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선거 때 충청의 지지를 얻으려는 정치세력, 즉 정당들이 충청을 치켜세우며 정략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대망론과 캐스팅보터라 할 수 있다.

2022년에는 3월 9일 대통령 선거와 6월 1일 지방선거가 있다. 사상 처음으로 같은 해 치러지는, 그야말로 대한민국 정치사를 새롭게 기록하는 역사적 사건이다. ‘충청대망론’은 과거 좌절의 역사는 과감히 잊고 바닥부터 시작해야 한다.



충청대망론이 정치적으로 태동한 건 작고한 김종필 전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한 세력이었다. 고 박정희와 김대중 정부에서 두 차례 국무총리를 지내고 최다선 국회의원(9선)을 지내는 등 정치사의 한 획을 그었지만, 끝내 대통령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이후에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이회창이 등장했고 이인제 역시 한때 주목받았지만 거기까지였다. 1988년 5월부터 2006년 3월까지 충남도지사를 지냈던 심대평 전 국민중심당 대표는 지역주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 서울대 총장을 지낸 정운찬 전 국무총리도 잠시 충청대망론의 꿈을 꾸었고,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역시 유력한 충청권 대권 주자로 떠올랐지만 정계에는 발도 디디지 못했다.

충청대망론에 가장 가깝게 다가섰던 주인공은 고(故) 이완구 전 국무총리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다. 하지만 이완구 전 국무총리는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사건으로 평생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고,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였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는 비서 성폭력 사건으로 충청의 자존심을 짓밟고 충청대망론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렸다. 대선을 앞둔 지금은 아버지의 고향이 충청이라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에 기댈 정도로 초라해졌다.

하지만 충청대망론 주자라는 타이틀은 가볍게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여야를 떠나 권력에 붙어 자리를 차지하거나 한몫 잡으려는 기득권 세력이 범접할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정략적인 측면을 떠나 올해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든 유일한 충청권 후보였던 양승조 충남도지사의 결단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충청대망론의 역사는 이렇게, 처음부터 다시 기록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캐스팅보터도 이제 접을 때다. 결정은 충청이 한다는 캐스팅보터라는 유혹에 더 이상 속아선 안 된다. 사실 충청이 캐스팅보터라는 말은 어찌 보면 정략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오랜 지역주의로 인해 굳어진 영·호남 중심의 양당 구조 속에서 충청을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해 선거 때만 잠깐 충청을 보듬는 수단에 불과했다. 충청은 그때마다 '우리가 결정한다’는 착각에 빠져 대선이나 총선 때마다 양쪽으로 오가며 줄타기를 해왔다.

이제 캐스팅보터 역할은 그만하고 선거의 주인공으로 올라서야 할 시점이다. 스스로는 살아가지 못하는 약자가 버티기만을 위해 펼치는 기생(寄生)의 전략처럼 선거 때마다 충청권의 할 일로 규정되는 캐스팅보터 역할은 과감히 거부하고 청산할 때다.

충청의 손으로 대한민국 운명을 직접 결정짓는 날이 속히 오지는 않을지라도, 충청도의 고유한 열망을 담은 고귀한 대망론의 꿈을 쉽게 타협해 잃어버려선 안 된다. 대선과 지방선거를 함께 치르는 2022년 임인년, 새롭게 태동하는 충청인의 진정한 대망론을 기대해본다.

윤희진 정치행정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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