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혁 한국한의학연구원 정책부 한의정책팀장 |
사실 한의학 치료법을 순서대로 나열하라면 제일 먼저 침을, 두 번째로 뜸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약을 꼽을 정도로(一針, 二灸, 三藥) 침 치료를 중요하게 여겼다. 그렇다면 침이 효과가 있는 원리는 무엇일까? 사실 침은 도구일 뿐 그 근본적인 원리는 경락이론이다. 경락이론을 간단히 얘기하자면, 몸에는 기혈이 순환하는 열두 개의 경락이 있고, 그 경락의 일정한 지점인 경혈을 자극함으로써 기혈의 순환을 조절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살아 있는 생물에 존재하는 신호전달 네트워크인 셈이다. 이 경락은 몸 안의 내부장기부터 외부의 피부까지 이어져 있기 때문에 인체 표면에 있는 혈자리를 침과 뜸 등으로 조절함으로써 인체 내부를 조절하고, 이를 통해 병을 고치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적인 기반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신체 내부의 병을 침으로 고칠 수 있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경험적으로 얻어진 통찰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과학의 시대. 시대의 눈높이를 충족시키고자 이러한 침의 효과와 경락의 실체와 기능을 규명하기 위해 최근 학자들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접근해보고 있다. 해부학적인 실체가 있다고 가설을 세운 학자들은 봉한관, 프리모관이라는 이름으로 경락 자체의 실체를 찾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아직 충분한 근거가 모인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로는 임상적인 효능의 검증 연구이다. 이는 경혈과 경혈이 아닌 지점을 치료했을 때 임상적인 효과의 차이가 있는지를 규명하는 것이다. 현재 많은 연구들이 이 임상연구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임상 근거를 구축하기 위해 많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연구는 원리에 대한 규명보다는 효과에 대한 데이터를 쌓아서 역으로 추론하기 위한 연구에 가깝다. 경험 데이터를 실험 데이터로 재구현하는 것이지 원리를 밝히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경락의 생리학적인 연구이다. 경락의 기능적인 특성을 밝히기 위한 연구이다. 전기적 신호로 전달이 되는지, 화학적인 전달체계인지, 인체의 신경계와는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 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다. 최근 점차 연구가 많아지고 있으며, 좋은 저널에 많이 실리고 있는 연구 주제이기도 하다. 최근 한국한의학연구원과 미국 하버드대 의대 팀이 공동으로 침 치료가 신경 전도속도를 높이고 뇌 감각영역 전도의 변화를 일으킨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아직도 경락경혈의 정체와 침의 효능은 알려진 것보다는 알려지지 않은 것이 더 많다. 그리고, 다양한 질환에 대한 임상연구, 과학적인 원리 규명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가 없다면, 결국 침은 근골격계 치료에만 효과가 있다는 틀 속에 박제가 되어버릴 것 같다. 사실, 필자도 10여년 전 한창 의료기관에서 환자를 볼 때는 근골격계 질환보다는 위장질환에 침을 더 활용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침 치료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과 한계가 더욱 아쉬운지도 모르겠다. 침은 생각보다 강력하고 좋은 치료법이자 부작용도 많지 않다. 특별히 치료법이 정해져 있는 병이 아니라면 다들 우선 침 치료부터 한번 받아보시라 권유한다. 이준혁 한국한의학연구원 정책부 한의정책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