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니 2018년, 2019년 각기 다섯 편의 영화로 한 해를 추억했었습니다. 올해는 그러기가 어렵습니다. 그래도 올 한 해 제 마음에 아름답게 새겨진 작품들을 돌아보려 합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저처럼 해 보시면 어떨까요? 일기장에 쓰시든,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을 통해서 다른 분들과 나누시든 분명 의미 있는 일이 될 겁니다.
제 마음속 첫 번째 영화는 '자산어보'입니다. 맨 처음 개봉된 작품이기도 하거니와 제 오래된 좋은 영화의 기준에 딱 맞습니다. 많은 생각, 깊은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 으레 실학, 서학 하면 정약전보다는 동생인 다산 정약용을 칩니다. 그런데 영화는 더 멀리 바다까지 가서 높디높은 하늘이 아니라 낮게 땅에 사는 사람들의 삶과 또한 그들이 기대어 생계를 꾸리는 바다를 궁구하는 자산의 생을 흑백으로 재구성합니다. 삶의 자리와 위치를 성찰하게 합니다.
'모가디슈'는 류승완 감독의 오랜 영화적 흐름과 닿아 있습니다. 어렵고 힘든 상황과 온몸으로 부딪쳐 살아남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30년 전 아프리카 소말리아의 내전 통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남북한 외교관들의 절박한 공조와 협력은 이미 냉전 시대가 끝났음에도 분단 상태로 있는 우리 민족의 현실을 돌아보게 합니다. 냉전의 산물인 한반도 분단의 해결이 그 누구도 아닌 우리 민족 스스로의 몫임을 생각하게 합니다. 전기도 끊겨버린 늦은 저녁 지친 사람들이 조촐한 밥상을 함께 하던 장면이 오래도록 기억됩니다.
'크루엘라'는 대단히 신선했습니다. 소위 장르 비틀기, 캐릭터 비틀기를 보게 합니다. 액션 영화인가 했는데 여성 영화적 면모가 깊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악당의 전사(前史)인가 했더니 여성 주체의 통쾌한 삶의 선언이었습니다. 주인공이 어머니인 남작 부인을 없애거나 극한으로 보복하지 않는 모습이 대단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내처 생각해 봅니다. 크루엘라는 장차 엄마가 될까? 된다면 자기 어머니와 같을까 아니면 다를까? 흑과 백으로 분명히 나뉜 그녀의 머릿결과 도발적인 눈매가 강렬하게 떠오릅니다.
'기적', '생각의 여름'도 즐거웠습니다. 새해 더욱 새로운 영화의 기쁨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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