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성희 기자 |
나는 충청(忠淸)이로소이다.
태백산맥에서 뻗어 나온 차령산맥을 뼈대 삼아 서해의 푸른 물길을 동무 삼아 550만 충청인을 품고 있는 범(虎)이라오.
나는 한때 백제 왕조가 누비던 터였소. 비록 678년 번성했던 시절은 흙으로 돌아갔지만 강성했던 백제의 힘은 여전히 내 안에 꿈틀거리고 있소.
대한민국의 중심은 바로 나라오. 땅의 심장부에 있지만 나는 그저 홀대와 설움으로 점철된 한(恨)의 역사를 되풀이할 뿐이오.
조선 개국 후 비로소 얻게 된 '충청도'라는 이름은 내게 아픔이오. 충공도, 공청도, 홍충도, 공홍도로 무려 366년 동안 20번이나 이름이 개칭되는 수난을 겪어야만 했소. 뼛속부터 수도였던 한양, 신라 왕조의 경남, 조선 왕조의 전남… 전국팔도 누가 우리와 같은 아픔을 겪어 봤단 말이오. 나라에 큰 고비가 있을 때마다 의(義)와 충(忠)으로 헌신하며 희생했던 곳은 바로 충청이었소.
그렇게 살아왔건만 현대에도 홀대의 뿌리는 여전하오.
정부가 주는 곳간 예산은 전국에서 가장 적고, 인구대비 나랏일 하는 사람도 가장 적소. 어디 이뿐이오. 국책사업은 명백한 이유도 없이 번번이 탈락하는 아픔을 맛봐야 했소. 4개 시·도가 힘 합쳐 혼신을 다해야만 그제야 우리 몫이 되오.
전국에서 유일하게 지방은행이 없어 뼈를 깎는 경제 위기를 온몸으로 견뎌야 했고, 외지 업체들의 공격에 향토 기업들은 맥없이 쓰러졌소.
균형발전은 충청에 허울 좋은 변명에 불과했소. 행정수도 사수로 비로소 균형발전의 포문을 열었지만, 이 싸움도 기나긴 충청인의 염원이었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라오. 잊을만하면 반복되는 충청 홀대, 이제는 고유명사처럼 되어 버린 이 틀을 확실히 깨야만 하오.
어떤 일을 하거나 누릴 수 있는 힘과 자격을 '권리'라 부른다오. 충청의 것이어야 했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이제 나는 550만의 충청인들과 일어서려 하오. 산산 조각나 잠든 백제의 혼을 두드려 깨우겠소.
뒷짐 진 양반처럼 그저 침묵해온 시간, 나는 저무는 신축년에 모두 묻었소.
전장을 누볐던 용맹했던 백제장수의 마음으로, 국토의 중심에서 대전, 세종, 충남, 충북 4개 시·도를 모두 돌아 하나의 물길이 되어 오는 금강의 기개처럼 임인년(壬寅年) 아침 해와 마주하겠소.
이해미 기자 ham7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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