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득용 전 대전문인협회장 |
사람들은 황량한 겨울이 왔다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외투 깃을 서둘러 세웁니다. 한 해를 보내는 이야기와 또 한해를 맞기 위한 성찰을 기억해야 하는 이맘때쯤이면 헛헛함으로 오가는 플랫폼에서 우린 잠시라도 묵상을 해야 합니다. 해마다 겨울이 되면 뿌연 미세먼지들 때문에 뉴트럴그레이(neutral gray)가 되는 도회는 그렇다 치더라도 자고 나면 급증하는 코로나 확진자 때문에 성공적인 K-방역으로 단계적 일상회복을 하겠다는 위드코로나가 40여 일만에 중단되고 말았지요. 그리고 더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조치로 소상공인들과 자영업자들의 분노가 비등점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묘서동처(猫鼠同處)가 된 대선판에서 후보들의 명도(明度) 차이가 자꾸만 혼미해집니다. 아무래도 올 섣달 풍경은 고즈넉하고 순탄치만은 못할 것 같습니다.
하얀 눈꽃 세상이 그리워 안달하던 지난 주말 저녁 유치원 다니는 외손녀가 달뜬 목소리로 눈이 온다는 전화에 속수무책 서둘러 갔습니다. 며칠 있으면 여섯 살이 되는 그 아이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발레리나가 되고 싶어 합니다. 다음 날 유치원 다른 반 선생님과 원생이 확진되어 임시 선별진료소에 다녀왔다는 딸아이네는 다행히 음성 판정을 받았습니다. 하마터면 온 식구가 코로나에 감염될 뻔하였지만 얼떨결에 첫눈이 오는 날 외손녀와 함께 크리스마스트리 앞에서 찍은 사진은 동화 속 나라 풍경으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어느 시인은 첫눈이 오는 날 만나자고 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이 온다고 하였지만 이는 눈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인문학적 수사일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첫눈이 오는 날 만나자고 철석같이 약속하지만 시간과 공간 그리고 기후 환경이 서로 다른 좌표에서 우리는 살아가기 때문에 눈이 온다는 사실조차도 까마득히 모르거나 잊는 일이 다반사이지요. 그리하여 눈이 오는 날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이 아니라 몸은 여기에 있는데 마음은 딴 곳에서 어쩌면 그리움을 만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어느 먼 곳의 그리운 소식처럼 눈이 오기를 기다리고 나는 오늘 눈이 온다면 다시 눈 위에 시를 쓰겠습니다.
"첫눈 오는 날/ 숨겨놓은 여자에게 보내야 할/ 문자메시지가/ 아내에게 가버렸다/ 참 낭패스러운 일이다"라며 젊은 날 호기로운 만용으로 다가왔던 눈은 "어젯밤 몽환이 눈으로 내리고 있다/ 우리 사랑이라고 억지를 부린들 나를 탓할 건가/ 바람 불면 펄펄 날려/ 세상사 분분함을 알리고/ 바람 그치면 적요의 꽃으로 피어나/ 붉지 않아도/ 감탄할 수밖에 없는/ 저 꽃덩어리/ 나도 너에게 한 송이 눈이었으면 좋겠다/ 금세 너의 뜨거운 키스에 사라지고 말지라도/ 이 세상 그보다 더 행복한 순교 어디 있으랴" 고해성사가 되었지요.
4년 전 쓸쓸하게 눈이 내리던 날 내 몸의 직무유기로 암 선고를 받고 "참 많은 생각들을 했었어/ 아내와 아들 딸 사위 시은이/ 그리고 사랑했던 사람들과/ 살아온 날들이며 살아갈 날들이/ 자꾸만 내 목젖에서 울컥하며/ 헛헛한 웃음이/ 밀물과 썰물로 부서지는 겨울하늘/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것은 없고/ 세상에는 슬픔보다 더 큰 공포는 두려움이지만/ 나는 태양을 향해 걷는 낙타가 되기로 했어/ 오늘 눈이 온다면/ 눈꽃보다 아름다운 눈사람을 만들거야" 라며 다짐했던 그 눈사람은 바람을 피해 나온 햇살에 지금은 다 녹아버렸지만 오늘 눈이 온다면 내 몸의 안부가 다시 궁금해질 것입니다. /권득용 전 대전문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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