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랑올랑 새책] 영화적 판타지가 없는 현실이 되면

  • 문화
  • 문화/출판

[올랑올랑 새책] 영화적 판타지가 없는 현실이 되면

영화, 언어로 세상을 보다
시네마토피아,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 승인 2021-12-24 09:03
  • 오희룡 기자오희룡 기자
책123
▲게티이미지뱅크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어느가족'의 일본식 제목을 해석해 보면 '도둑 가족' 쯤 된다.

실제 이야기도 가족이 아닌 사람들이 모여 물건을 훔치며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사니 원제가 모호한 '어느' 가족이라는 제목보다는 본연의 정체성에 더 맞을수도 있겠다. 혼혈일본계가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기만 해도 '일본의 승리'라며 자축하던 일본인들은 일본의 가장 밑바닥 치부를 전 세계에 알린 이 영화에 대한 환호를 '영광'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회시스템에서 소외된 사람들, 그들이 이루고 있는 기이한 공동체, 명백한 계급이 존재하는 사회는 일본 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문제다.

그래서, 현실의 견고한 시스템과 그로 인한 패배와 좌절을 오롯히 말하는 영화는 비단 일본만이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든 환영받긴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그대로 투영하는 영화가 계속해서 나오는 것은 더 이상 영화적 현타지가 나올수 없는 현실 때문이다.

우리가 생각 하는 것 이상으로 현실이 불합리하고, 불완전하고, 비도덕적 세계라면 영화는 저널리즘이 되고, 개인의 생존경쟁이 요구될때 영화는 우리가 나아가야할 공동체의 방향을 말한다.

말, 그리고 지금 우리의 서사를 영상으로 담는 영화를 통해 우리 사회에 담론을 제기한 책들이 출간됐다.

2014년부터 신문에 연재한 칼럼을 엮어 출간한 강유정 평론가의 '시네마토피아'(강유정 지음, 민음사 펴냄, 436쪽)가 문학과 영화, 저널리즘을 통해 한국 사회의 현재를 다각도로 바라보고 있다면,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지영 지음, 광화문글방 펴냄, 260쪽)은 갑자기 모국어를 잃은 주인공을 통해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젠더일까? 한민족 일까? 동양인일까? 약자일까 강자일까?

시네마
▲영화적 판타지가 불가능해져버린 사회 '시네마토피아'=시네마토피아는 영화를 의미하는 '시네마'와 '어디에도 없는 땅, 유토피아'가 결합된 새로운 말이다. 말 그대로 '영화의 땅'이자 '지금 이곳에 없는 낙원'과 같은 의미다. 영화를 통해 사회문제를 끄집어 내고, 그안에서 시대의 담론을 담고 있는 작가의 서사가 그대로 녹아 있다.

실제 기자의 모습이 아닌 우리가 보고 싶은 혹은 보여지고 싶은 기자의 모습들만 영화에 나온다고 말하는 작가는 영화 '스포트라이트'와 '자백',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을 통해 기자가 사라지고 영화가 저널리즘처럼 사회적 진실 규명을 추구하게 된 현실을 집어낸다.

어느덧 기자가 기레기가 되고, 가짜 뉴스로 대중의 신뢰를 읽고 있는 언론의 자기 검열과 역할에 대한 저자의 비판이 날카롭다.

이와 함께 어느날 낯설고 외딴곳에서 사투를 벌여야 하는 청소년들을 그린 '헝거게임', '메이저러너'를 통해 견고하고 위협적인 사회시스템에서의 생존 경쟁을 말한다.

작가가 여러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지금 우리는 어떤 공동체를 원하는 가"이다. 영화 '동주'의 동지애적인 관계가 아닌 각자의 신념을 존중하는 우정을 보면 작가가 그리는 공동체를 유추할 수 있다.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영화를 통해 우리사회의 어둡고 무겁고, 그래서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끄집어 낸 작가의 질문은 세련되고 산뜻하다.



▲어느날 내가 모국어를 할수 없게 된다면.....'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테세우스와 아테네의 젊은이들이 탄 배는 아테네인들에 의해 데메트리오스 팔레레우스의 시대까지 유지 보수됐다. 부식된 헌 널빤지를 뜯어내고 튼튼한 새 목재를 덧대어 붙이기를 거듭하니, "배의 모든 부분이 교체되었더라도 그 배는 여전히 '바로 그 배'인가?"라는 질문이 철학자들 사이에서 제기됐다. "어떤 이들은 배가 그대로 남았다고 여기고, 어떤 이들은 배가 다른 것이됐다"고 주장했다.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은 테세우스의 배처럼 모국어를 잃고 한국어를 쓰게 된 주인공이 언어적 정체성이 바뀐 존재가 되면서 과거의 존재가 전체 인생에서 진짜 본질이 맞는지에 대한 실존적 화두를 던진다.

모국어를 잃고 전혀 다른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것은 몸에 다른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몸 자체가 바뀐 것과 같아 결국 이 세계에서 고립되고 먼지로 사라질수 밖에 없다는 설정은 '언어는 문화이자 반영'이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작품 전체를 '수키 증후군'과 관련된 인터뷰와 기사만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형식도 흥미롭다.
오희룡 기자 huily@



*올랑올랑은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뜻의 순 우리말입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고교 당일 급식파업에 학생 단축수업 '파장'
  2. 대전 오월드서 에어컨 실외기 설치 작업자 추락해 사망
  3. 열악했던 대전 여성노숙인 쉼터…지원 손길로 '확 달라졌다'
  4. "뿌리부터 첨단산업까지… 지역과 함께 혁신·성장하는 대학"
  5. 대전 중구 교육부 평생학습도시 신규 선정 '중구가 대학, 온마을이 캠퍼스'
  1. 대전교사들 "학교 CCTV 의무화, 사건 예방에 도움 안돼" 의무화 입법에 반발
  2. 계룡산성 道지정문화재 등록 5년째 '보류'…성벽과 기와 무너지고 흩어져
  3. 대전 금고동 주민들 "매립장·하수처리 공사장 먼지에 농사 망칠판" 호소
  4. 사랑의 재활용 나눔장터 ‘북적북적’
  5.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헤드라인 뉴스


[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탄핵정국 속 두 쪽으로 갈라진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고 민주주의가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4·2 재보궐선거 본 투표 당일인 2일 시의원을 뽑는 대전 유성구 주민에게선 사뭇 비장함이 느껴졌다. '민주주의의 꽃' 선거를 통해 주권재민(主權在民) 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발현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저마다 투표소로 향한 것이다. 오전 10시에 방문한 유성구제2선거구의 온천2동 제6투표소 대전어은중학교는 다소 한산한 풍경이었다. 투표 시작 후 4시간이 흘렀지만 누적 투표수는 고작 200표 남짓에 불과했다. 낮은 투표율을 짐..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국내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이 약 9500여 만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40대 차주의 평균 대출 잔액은 1억 1073만 원으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이 한국은행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은 9553만 원으로 조사됐다. 이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지난 2012년 이후 역대 최고 수준이다. 1인당 대출 잔액은 지난 2023년 2분기 말(9332만 원) 이후 6분기 연속 증가했다. 1년 전인 2..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숨겨진 명곡이 재조명 받는다. 1990년대 옷 스타일도 다시금 유행이 돌아오기도 한다. 이를 이른바 '역주행'이라 한다. 단순히 음악과 옷에 국한되지 않는다. 상권은 침체된 분위기를 되살려 재차 살아난다. 신규 분양이 되며 세대 수 상승에 인구가 늘기도 하고, 옛 정취와 향수가 소비자를 끌어모으기도 한다. 원도심과 신도시 경계를 가리지 않는다. 다시금 상권이 살아나는 기미를 보이는 역주행 상권이 지역에서 다시금 뜨고 있다. 여러 업종이 새롭게 생기고, 뒤섞여 소비자를 불러 모으며 재차 발전한다. 이미 유명한 상권은 자영업자에게 비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 한산한 투표소 한산한 투표소

  •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앞 ‘파면VS복귀’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앞 ‘파면VS복귀’

  •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