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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입시 경쟁을 치루던 당시 우리 사회에서 이 죽은 시인의 사회는 자유롭고 주도적인 대명사로 인식됐지만, 이제와 생각하면 '시를 암송하는' 이 '죽은 시인의 사회' 모임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낭만적이다. 책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도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따위는 삶의 도구가 되지만 시와 아름다움, 낭만과 사랑은 삶의 목적이라는 말이 나온다.
어느 시절에는 약속 장소가 시내의 대형 서점일 때도 있었다. 몇 시께로 시간을 정하고 서점에서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친구가 옆에서 다른 책을 읽기 시작한다. 같은 공간에 서로의 존재를 직감하면 이내 읽고 있던 책으로 마저 집중한다. 언제 오는지 목을 빼며 기다리지도, 늦게 온다고 눈치를 주지 않고 그냥 '거기 서점에서 보자'고 약속하던 그 시절 이야기다.
어느덧 죽은 시인의 사회를 지나 시가 죽은 사회가 됐다. 시를 읽기 보다는 컴퓨터와 휴대폰이 익숙한 시대에 시간과 공간과 시절과 사람을 담는 '시'는 쉬운 말을 일부러 복잡하고 어렵게 조합한 단어의 나열일 뿐이다. 서점에서 책 냄새 맡으며 책을 고르고,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집어 들던 시대는 가고 이제는 '어려운 인간 관계'의 비법과 '우울한 내 마음을 달래주는' 문구에 홀려 책을 주문한다. '내'가 문제인지, '네'가 문제인지, '지금 사회'가 문제인지를 분석하며 '그러니까 지금 내 문제는 사회 시스템적으로 어쩔수 없는 부분'이라는 말에 위안을 삼는다. 그런 세상에서 시가 자리할 부분은 한 뼘쯤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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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엘리엇, 에즈라 파운드와 함께 비트 제너레이션(패배한 세대, 미현대문학의 한 조류)에 큰 영향을 줬던 윌리엄스의 시집이 국내에 소개된 것은 처음이다.
윌리엄스의 시는 특별할 것이 없는 평범한 이들의 이야기다. 고향 리더퍼드에서 소아과 의사로 일하며 시를 쓴 윌리엄스는 낙후된 고향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인 '별 볼일 없는 이들, 그 끔찍한 얼굴의 아름다움'을 노래해왔다.
'꽃의 연약함...'이 "한행도 무의미한 부분이 없다"로 평가 받았던 '원하는 이에게'에서 1938년까지의 작품을 담았다면, '패터슨'은 후기 작품들과 연작시 '패터슨'을 묶었다.
오희룡 기자 hu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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