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의 가난한 마을에서 태어난 무하는 어릴 적부터 미술과 음악에 타고난 예술적 재능은 있었다. 하지만 넉넉지 못했던 가정형편은 그에게 예술교육의 기회 대신 20대 중반에 파리로 건너오게 했다. 별 일거리 없이 소일하던 무하는 모두가 파티를 즐기던 크리스마스이브에도 혼자 친구의 공방을 지키고 있었다. 이때 뜻밖에도 당대 최고 연극배우였던 사라 베르나르의 전화를 받게 되었는데, 준비된 자에게 도전은 곧 기회가 되었다. 자신을 주인공으로 제작한 포스터가 마음에 들지 않던 배르나르는 분노와 절망을 표하며 새로 포스터를 그려줄 사람을 급히 찾고 있었고, 무하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스타일로 그녀를 대만족 시켰다.
중세 그리스를 배경으로 한 4막 연극 '지스몽다'의 여주인공이었던 베르나르를 은은한 색으로 누가 봐도 우아하고 귀족적인 여신으로 그렸다. 거기다 종이 두 장을 세로로 이어붙여 세로로 길게 만든 포스터의 크기 또한 신선했다. 이 포스터의 성공은 중년의 연극배우 베르나르에게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했으며, 무하는 이후 6년 동안 그녀와 함께 작업했다. 이로 인해 무하의 실력은 파리 전역에 알려졌고, 이는 곧이어 그에게 명성과 부를 가져다주었다.
무하의 작품은 화려하고 장식적이다. 그만의 독특한 양식은 정교하고 유려한 곡선으로 아름다운 자연의 생태를 표현하고 그 중심에 여성을 두는 것이다. 작품 속 여인은 항상 슬라브 민족의 전통의상을 입었고, 성적 대상이 아닌 아름다운 여성으로서 표현되었다. 이렇듯 작품에 대한 그의 철학은 오로지 그가 살았던 체코의 문화와 슬라브 민족의 전통적인 예술 형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의 디자인에 매료된 사람들의 주문은 끝이 없었고, 그는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했다. 그러나 평소 지론이 '예술가는 근본적으로 자기 자신과 조국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였던 무하는 1910년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조국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슬라브 서사시(Slav Epic)'라는 연작을 통해 표현했다.
비록 1939년 나치 독일에 의해 조국 체코가 해체되고, 그는 체포되어 안타까운 생을 마무리했지만, 무하의 스타일은 1960년대 이후 새롭게 재조명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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