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만 교수 |
메르켈 총리는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로서 남성이 지배하는 정치세계에서 초창기 때만 하더라도 과소평가되었음에도 16년 동안 4번의 정부를 이끌며 수많은 난제와 위기를 극복했다. 4명의 미국 대통령, 5명의 영국 총리, 4명의 프랑스 대통령과 함께 일했다. 그래서인지 해외에서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없는 독일과 유럽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입을 모은다. 유럽의 중심에 있는 경제 대국 독일이 이 여성 총리 없이도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머리를 갸우뚱한다.
메르켈은 소박하고 침착하면서도 실용적으로 껄끄러운 파트너들을 만났다. 온갖 도발에도 불구하고 도널드 트럼프나 블라디미르 푸틴 등 이른바 권위주의의 세계화를 표방하던 시기에도 언제나 침착하게 민주주의 체제의 위용을 등에 업고 자신의 정치적 나침반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이는 독일보다 해외에서 더 잘 인식되곤 했다. 2019년 하버드대학 연설에서 "무엇보다 타인에 대한 진실성이 필요하고 가장 요긴하게 우리 자신에 대한 진실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여기에는 "거짓을 진실이라고 하지 않고 진실을 거짓이 아니라고 하지 않는" 메시지도 담겨있다.
메르켈은 독일 자체보다 해외에서 더 사랑받고 존경받았다. 물론 해외에서 인기가 없고 유명세를 타지 못할지언정 여러 가지 불쾌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리스는 여전히 금융 위기의 심각성을, 이탈리아는 2015년 이전에 닥친 이민 위기를 외면하고 있다. 폴란드는 러시아의 노드 스트림-2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승인하며 여전히 고군분투 중이다. 그러나 메르켈이 국제적으로 누리는 존경심은 논쟁의 여지가 있는 자신의 결정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오랫동안 여타 정치인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정치 스타일을 상징하기 때문에 16년 동안 순탄하게 집권했다. 그리고 스스로 결정한 퇴임을 통해 자발적인 권력 이양이 존엄성과 존경심을 가지고 수행될 수 있는 방법론적 기준을 세웠다.
따라서 해외의 많은 사람이 메르켈 총리가 떠날 때 독일은 과연 무엇을 기대할 것인지 묻는 것은 놀랄 것이 못 된다. 게다가 독일 사람들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다. 기독교민주연합(CDU)은 줄곧 메르켈이 후계자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비난했지만, 정당정치의 차원을 고려하면 그렇지도 않다. 후임자인 사민당(SPD)의 올라프 숄츠는 4년간 메르켈의 부총리를 지냈다. 슐츠에게서도 안정성과 연속성은 독일 정치의 핵심 지침이란 점에서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떠나지만, 그녀의 정치 스타일은 여전한 셈이다.
메르켈은 당분간 베를린에 머물 것이란다. 양자화학자인 남편 요아힘 자우어가 훔볼트 대학교수 은퇴 이후에도 선임 연구원 계약을 2022년까지 연장한 때문이다. 궁극적으로는 퇴임 후 브란덴부르크의 구옥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참 격이 다른 정치 스타일이다. /이성만 배재대 항공운항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