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뜻은 몰랐지만, 부르면 어느새 숙연해 지는 '통일'은 마치 올림픽 금메달 수가 국가 순위라고 믿으며 밤을 세워 태극 마크를 응원하고, 국기 게양대 맨 위에 오른 태극기를 보며 눈시울을 닦던 정서와도 일맥 상통한다.
당연한 시대의 숙제라 부르던 '통일'은 여전히 우리의 소원일까.
도무지 어떻게 정의할 수가 없어X라 부르던 70년대 생 'x-세대'에 이어 줄이어 등장한 신세대들은 어느새 알파벳 z까지 와버렸고, 남북 단일팀을 구성하자는 논의에 힘들게 노력해 얻은 국가대표 기회를 '통일'이라는 담론에 밀려 뺏겨야 하느냐며 반발하는 젊은 국가 대표팀만큼 사회적 정서도 바뀌었다.
이제는 종전 논의까지 힘을 얻으며, 통일 보다는 '내집마련', '비트코인' 이 꿈인 세상에서 우리의 현대사를 살아낸 노년의 삶은 어떻게 비춰질까.
일제시대에서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쳐, 독재정권과 민주화 운동 등 누구의 삶을 들여다 봐도 굴곡지지 않고 힘들지 않은 삶은 없었을, 우린 부모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나란히 출간됐다.
80대 실향민 부부의 삶을 통해 본 대전, 한국의 역사를 담은 '아들아 살아보니 사랑이더라'(길재섭 지음, 미디어줌 펴냄, 284)가 부모의 기억을 통해 지역과 우리의 현대사를 그리고 있다면 '어머니의 밥상'(강병철 지음, 작은숲 펴냄, 276쪽)은 '밥'을 안먹으면 큰일 나는줄 알았던 그 시대 우리 부모의 이야기를 담았다.
▲어머니의 밥상=강병철 작가의 '어머니의 밥상'은 지난해 봄부터 갑자기 쓰러져 2년이 되도록 병상에 계신 어머니의 식사 모습을 보며 엮게 된 산문집이다.
요양병원으로 입원한 어머니의 밥상은 환자용 식기에 담긴 다소 초라한 밥상이다. 작가는 이 초라한 밥상을 보며 어린 시절 어머니의 밥상을 떠올린다.
작가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밥상은 어머니 손에서 자라고 다듬어진 것들로 채워진 살뜰한 밥상이다.
남편과 자식들의 입맛에 따를 뿐 정작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은 절대 밥상에 올리지 않았던 어머니는 어쩌다 외식날 좋아할 법한 음식이 올라와도 "난 원래 그런 거 싫어혀"라며 손사래를 쳤다.
저자는 '맛있는 게 없을 줄' 알았던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입원하고, 초라한 식기에 담긴 식사를 하던 모습을 보고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오랜 세월 동안 남편과 자식을 위해 자신의 입맛마저 잃어버리고 살아온 어머니의 삶에 가슴이 먹먹해진 작가는 어머니의 희생의 삶에 일제 식민지 시대 징용으로 끌려갔다가 살아 돌아온 아버지 녹록치 않았던 인생도 글로 담았다.
문장 하나하나에 느껴지는 사람과 세상에 대한 작가의 애정은 독자로 하여금 몽글몽글한 감성을 일으킨다.
▲아들아, 살아보니 사랑이더라=해방 후 평안도 영변과 황해도 황주에서 월남해 부산에 뿌리를 내렸던 실향민의 삶을 아들이 구술을 받아 엮은 '아들아, 살아보니 사랑이더라'는 책 제목처럼 힘겹고 고된 삶을 살아낸 노 부부의 달관과 가치관을 보여준다.
책은 이제 팔십대인 책 속 주인공들은 해방과 한국전쟁을 직접 경험한 마지막 세대다. 두 주인공은 같은 세대의 많은 이들처럼 평범하고 힘들게 살았지만 삶의 모든 장면에서 고집스러울 정도로 성실히 살았다.
저자는 부모들의 일대기를 구술 받으며 모든 이야기가 사실에 근거하는지 확인하는 작업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래서 책 속에 나오는 모든 에피소드는 논픽션이다.
여기에 대전중앙시장 대화재 등 대전의 역사가 담겨 있어 흥미를 끈다.
저자는 두 주인공의 여러 사건과 삶의 여정을 시간 흐름에 따라 교차하면서 정리하면서 최대한 중립적으로 서술하기 위해 노력했다. 80대의 두 주인공들도 본인의 삶이 아름답게 미화되거나 과장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희룡 기자 hu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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