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 칼럼] 표현의 자유, 표현의 범람

  • 오피니언
  • 문화人 칼럼

[문화人 칼럼] 표현의 자유, 표현의 범람

송 전(한남대 명예교수)

  • 승인 2021-12-15 16:42
  • 신문게재 2021-12-16 19면
  • 한세화 기자한세화 기자
송전교수
송 전(한남대 명예교수)
한 편의 연극이 거의 100년 전 에피소드를 무대에 올렸다. 이제는 먼 과거의 인물인 스탈린(1878-1953)과 관련된 이야기다. 이야기 중심인물은 스탈린이 아니라 그와 동시대 인물인 미하일 불가코프(1881-1940)다. 원래 의사였던 그는 레닌이 주도한 러시아 10월 혁명 후 작가로 전업한 인물이었다. 첫 소설이 큰 반향을 일으켰고 그 후 극작가로 활동하였으나 곧 활동이 금지되었고, 나중에 그의 사후에야 작품이 출간된 그런 인물이다. 이 작가를 모델로 해서 현재 활동하고 있는 스페인의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 '스탈린에게 보내는 연애편지'를 썼고, 그 번역본을 '소풍가다 잠들다'를 쓰고 연출해 전국연극제 대상을 획득한 바 있는 김상렬 교수가 무대에 올린 것이다.

이 작품의 근본 물음은 독재체제 안에서 표현의 자유는 어떤 의미를 띠며, 어떻게 지탱해야 하는가다. 작품 배경은 레닌이 주도한 러시아 볼세비키 10월 혁명으로 새로이 건국된 소비에트 러시아 즉, 1930년대의 소련이며 그 안에서 당시 실제 활동하며 박해를 받았던 작가 미하일 불가코프(1881-1940)와 당시 권력자였던 스탈린(1878-1953)과의 관계가 형상화된다. 두 사람의 관계가 처음부터 적대적은 아니었다. 시를 쓰기도 했던 스탈린은 작가의 공연에 감동해서 15차례나 거듭 봤던 터였다. 작가는 "검열에 대항해 싸우는 것이 예술가로서의 가장 큰 의무"이며 "자유가 필요 없는 예술가는 물이 필요 없는 물고기"라고 천명한다. 자신의 문학적 특징인 '풍자'에 대해 "풍자를 한다는 건 금지구역을 침범하는 것"이며 "진정한 예술가에게 금지구역이란 없다"라고 단호히 말한다. 이런 작가의 언어가 두려운 스탈린은 이렇게 토로한다. "민중의 마음은 너무 변덕스러워서… 민중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더 적으로부터 지켜내는 게 훨씬 쉬워.(…) 민중을, 자기 자신에서보다 적으로부터 지켜내는 게 훨씬 더 쉬워." 연극이 민중을 움직여 체제를 뒤흔들 수 있다는 걸 두려워해서 볼가코프의 문학을 금지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스탈린은 온갖 음모가 난무하는 정치계에서 느끼는 자신의 고독과 공포를 토로한다. 독을 넣었을 거라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는 난 한 입도 먹어 볼 수가 없어. 공기에 독을 퍼뜨렸다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는 난 입을 벌릴 수가 없어. 지배와 피지배의 대척 관계에 있는 두 사람은 모두 그 상태에서 자유롭지 않다. 모두 패자인 셈이다. 작품은 불가코프의 청탁의 실현은 이뤄지지 않은 채 끝난다. 그를 돕던 아내도 그의 곁을 떠난다.

한때(1960년대-80년대) 한국 연극계는 번역극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번역극의 비중이 현저히 낮아졌다. 이런 변화는 긍정·부정의 양 측면을 지닌다. 긍정의 측면은 우리의 정서, 생각, 사회 문제 등을 현실적으로 담아내는 창작극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한편 번역극의 퇴조는 우리 연극이 글로벌 문화에 대한 개방성을 지니지 못하고 글로벌 이슈를 놓칠 수 있어, 한국 연극이 자칫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 부정적 측면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외국 문제작이 좀 더 적극적으로 한국 무대에 수용될 필요가 있을 터인데, 그런 의미에서 금 번의 '스탈린…'공연은 동시대 작가의 특이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매우 유익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 작품이 지닌 진지함이나 무게감이 얼핏 현실과 멀리 있는 듯한 느낌을 줄 수 있지만, 연출이 별로 인기가 없을 이 공연을 감행함은 "위대한 연극, 가장 좋은 연극은 생각하게 하는 것"이라는 작가의 말에 연출이 동의한 때문일 것이다.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기보다는 지나친 표현의 범람으로 폐해가 유발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미디어로 등장한 유튜브가 개인사를 이슈화해 '피 빨아 먹는장사'를 한다는 비난을 받는 지금의 상황에서 이 공연이 거꾸로 언론 자유의 의미와 귀중함을 새삼 되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공연이었다. 불가코프 역을 한 강지구의 연기도 볼만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신탄진동 고깃집에서 화재… 인명피해 없어(영상포함)
  2. 대전 재개발조합서 뇌물혐의 조합장과 시공사 임원 구속
  3. [사설] '폭행 사건' 계기 교정시설 전반 살펴야
  4. 금산 무예인들, '2024 인삼의 날' 태권도와 함께 세계로!
  5. 학하초 확장이전 설계마치고 착공 왜 못하나… 대전시-교육청-시행자 간 이견
  1. 화제의 대전 한국사 만점 택시… "역경에 굴하지 말고 도전했으면"
  2.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3. 대전용산초 교사 사망사건 가해 학부모 검찰 기소… 유족 "죄 물을 수 있어 다행"
  4. [국감자료] 교원·교육직 공무원 성비위 징계 잇달아… 충남교육청 징계건수 전국 3위
  5. [사설] CCU 사업, 보령·서산이 견인할 수 있다

헤드라인 뉴스


‘119복합타운’ 청양에 준공… 충청 소방거점 역할 기대감

‘119복합타운’ 청양에 준공… 충청 소방거점 역할 기대감

충청권 소방 거점 역할을 하게 될 '119복합타운'이 본격 가동을 시작한다. 충남소방본부는 24일 김태흠 지사와 김돈곤 청양군수, 주민 등 9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119복합타운 준공식을 개최했다. 119복합타운은 도 소방본부 산하 소방 기관 이전 및 시설 보강 필요성과 집중화를 통한 시너지를 위해 도비 582억 원 등 총 810억 원을 투입해 건립했다. 위치는 청양군 비봉면 록평리 일원이며, 부지 면적은 38만 8789㎡이다. 건축물은 화재·구조·구급 훈련센터, 생활관 등 10개, 시설물은 3개로, 연면적은 1만 7042㎡이다..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의 한 사립대학 총장이 여교수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대학노조가 총장과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학 측은 성추행은 사실무근이라며 피해 교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A 대학 지회는 24일 학내에서 대학 총장 B 씨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교수 C 씨도 함께 현장에 나왔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C 씨는 노조원의 말을 빌려 당시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C 씨와 노조에 따르면, 비정년 트랙 신임 여교수인 C 씨는..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20대 신규 대원들 환영합니다." 23일 오후 5시 대전병무청 2층. 전국 최초 20대 위주의 자율방범대가 출범하는 위촉식 현장을 찾았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원한 신입 대원들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첫인사를 건넸다. 첫 순찰을 앞둔 신입 대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맞은 편에는 오랜만에 젊은 대원을 맞이해 조금은 어색해하는 듯한 문화1동 자율방범대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위촉식 축사를 통해 "주민 참여 치안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자율방범대는 시민들이 안전을 체감하도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장애인 구직 행렬 장애인 구직 행렬

  •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