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 忍(참을 인) 辱(욕되게 할 욕) 而(어조사 이) 待(기다릴 대)로 구성된다.
출전 : 김육(金堉)의 해동명신전(海東名臣傳).
비유 : 참고 기다리면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진다.
어느덧 중도일보(中都日報) 전자신문에 고사성어 칼럼을 게재(揭載)한지 2년이 다 되어 이제 100회를 싣게 되었다.
2년 전 평소 저를 많이 아껴주시던 문학가이면서 충청을 대표하는 칼럼리스트이신 김용복(金容福)선생님께서 간곡히 추천하시고, 또 당시 중도일보 편집국장을 맡아오시던 김의화 국장님의 고사성어에서 얻는 참된 교훈을 인용하여 주변을 풍자하고 정의(正義)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져보라는 권고아래 시작한 세월이 벌써 2년이 되었고 100회를 기록하게 된 것이다. 물론 김 선생님께 문법적인 오류나 내용상의 보완에 따른 지도를 받으면서 매주 화요일 중도일보(中都日報) ?장상현의 고사성어?로 이는 역사속의 실제 사건을 함축하여 몇 글자로 표현하되 이를 유익하고 재미있게 엮어나가 사회 속에서 사람들의 삶에 참된 교훈이 되도록 정리하고 있다.
필자로서는 자료 수집을 위하여 노력하다보니 여러 부분에서 유익됨을 나이 들어가며 얻기 어려운 축복(祝福)을 누리는 입장이 되어 자부심을 느끼며 열심히 하고 있다.
오늘은 우리에게 익숙한 고사로 조선시대 초(初)에 일어났던 간단한 이야기를 살펴본다. 본 내용은 필자가 국민학교(초등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 실렸던 내용으로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내용임을 미리 밝혀둔다.
조선(朝鮮) 세종(世宗)때 윤회(尹淮:1380~1436)라는 현명한 선비가 있었다.
본관은 무송(茂松), 자(字)는 청경(淸卿), 호(號)는 청향당(淸香堂), 관직은 병조판서와 대제학을 역임했고, 문도(文度)라는 시호(諡號)를 받았다.
이 분이 젊었을 적에 있었던 일이다.
하루는 윤회(尹淮)가 시골길을 가다가 날이 저물어서 여관에 투숙하려 했는데, 윤회의 인상착의가 보잘 것 없고 초라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여관 주인은 특별한 이유 없이 윤회의 투숙을 허락하지 않았다. 날은 이미 어둡고 딱히 갈 곳은 없고 그래서 그는 여관집 마당에 쭈그리고 앉아 "낭패로구나"하며 고민하고 있었다.
이때 여관 집주인의 아이가 큰 진주를 가지고 나와 놀다가 마당에 떨어뜨리게 되었는데, 마침 마당을 배회하던 거위가 이 진주를 꿀꺽 삼켜버렸다.
거위가 삼켰다는 사실을 모르는 아이는 아버지에게 진주를 잃어버렸다고 말했고, 아버지는 잃어버린 진주를 찾기 위해 마당을 샅샅이 뒤졌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이 지경이 되자 주인은 진주를 도둑당한 것으로 간주하고 유력한 용의자로 마당에 앉아있던 윤회를 지목하여 그를 묶어두고 아침이 되면 관가에 알리려 했다.
윤회는 "그 진주는 거위가 삼켜버렸소"라고 변명하지 않은 채, 다만 "저 거위를 내 옆에 함께 묶어 두시오"라고만 말했다. 그리하여 윤회와 거위는 함께 묶여있는 신세 되었다.
다음날이 되자 진주를 삼켰던 거위는 배설을 했고, 그 배설물에서 주인집 아이가 가지고 놀던 진주가 배설물에 섞여 나왔다. 여관집 주인은 몸 둘 바를 몰라 했고, 죄송스런 마음으로 "아니, 그렇다면 어제 말을 하시지 그랬습니까?"라고 묻자,
윤회는 "만약에 어제 말했다면 주인장이 진주를 찾기 위해서 반드시 저 죄 없는 거위의 배를 갈랐을 테니 욕됨을 참고 기다린 것입니다 [故 忍辱而待(고 인욕이대)]." 라고 대답했다. 보통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에 봉착되었을 때 거위 배를 갈라 진실을 확인하자며 화를 냈을 텐데 윤회는 침착하게 참으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 고사는 또 다른 표현으로 '구슬을 찾아주고 거위도 살렸다[覓珠完鵝(멱주완아)]'라고도 일컬어진다.
우리는 위의 고사를 통해 자신의 편안함을 위해 남을 곤경에 빠뜨리지 말아야 한다는 값진 교훈을 얻게 된다. 다른 말로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용어로도 쓰이는데,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 길로 돌아가게 마련인 것'이라는 뜻이다.
현대의 바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인내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많이 받는다. 왠지 성급해지고 초조해저서 참고 기다리는 습성이 많이 줄어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세상이 어디 조급하다고 빨리 이루어지는 것인가? 설친다고 순서가 바꾸어지겠는가?
나이가 많이 들고 세상물정을 많이 겪으신 점잖은 어르신들도 참는 것을 극복하지 못해 '황혼이혼', '졸혼'이 늘어나는 추세인데 젊은 청년들이야 오직하겠는가? 해서 요즈음 아파트 층간소음 때문에 벌어지는 다툼, 현실을 비관하며 참지 못하고 세상을 등지는 일 등, 주위에 인내심부족으로 생기는 안타까운 일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우리는 불과 몇 십 년 전만해도 배고픔을 참아냈고, 중동의 열기를 참아냈으며, 산업현장에서 수출을 위한 무한한 땀을 참아내고, 끈기 있는 인내와 노력으로 국가고시에 합격하는 등 참음이 성공의 지름길을 대변하는 때도 있었다. 지금은 박정희 대통령의 통치력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풍족하고 삶의 질이 높아지니 인내의 한계점이 점점 낮아지는 것 같다
채근담(菜根譚)에 '성질이 조급하고 마음이 거친 사람은 한 가지 일도 이룰 수 없고, 마음이 온화하고 기질이 평안한 사람은 백가지 복이 저절로 모인다(性燥心粗者一事無成 心和氣平者百福自集/성조심조자일사무성 심화기평자백복자집)'고 했다.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참고 양보하는 미덕을 행동으로 실행해보면 어떨까?
장상현 / 인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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