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근에 숲이 보이는 아파트는 '포레', 도심을 강조하면 '센트럴', '어반', 호숫가에 있는 아파트는 '레이크', 공원 근처이면 '파크' 같은 식이다.
실제로 도시마다 00파크, 센트럴00와 같은 아파트가 즐비하다.
세종시는 우리나라 최초의 계획도시다.
산과 논과 들이 있는 나대지에 국제 공모를 통해 도시가 설계되고 건설됐다.
겨레로, 나눔로, 다붓로, 라온로처럼 한글로 거리이름을 짓고 한뜰 마을, 새샘마을, 도램마을, 해들 마을 처럼 아파트 브랜드 이름 대신 한글 이름을 붙였다.
이 수평적 도시인 세종시도 00마을 0단지 000센트럴 같은 건설사의 브랜드를 붙이는 경우가 많아졌다.
아파트 위치와 브랜드에 따라 집값이 결정되는 동시에 사회적 위치까지 정의되는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반증인 셈이다.
사실, 강남과 강북, 수도권과 광역시, 신도시 등 사는 지역, 아파트만 봐도 우리나라에서 그 사람의 사회적 위치와 경제력, 정체성은 쉽게 알수 있다.
아들의 여자친구의 주소를 듣고 교제를 허락하고 반대하는 부모가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 같은 주소는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그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주소가 없던 고대 로마부터 디지털 주소까지 주소에 담긴 이야기를 다룬 '주소이야기'(디어드라 마스크 지음, 연아람 옮김, 민음사 펴냄, 496쪽)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문화와 부와 권력, 정체성의 탄생과 정의를 '주소'를 통해 얘기한다.
저자 디어드라 마스크는 미국 전역뿐 아니라 영국, 독일, 오스트리아 등 유럽 지역과 한국과 일본, 인도, 아이티, 남아프리카 공화국까지 전 세계의 사례를 취재하고 인터뷰해 주소에 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그려냈다.
책에서 저자는 주소는 단순히 위치를 지정하는 수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소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고 말한다.
영국에서는 스트리트(street)에 있는 주택이나 건물이 레인(lane)의 건물에 비해 절반 가격에 거래되고, 미국에서는 '레이크(lake)'가 들어간 주택이 전체 주택 가격의 중앙값보다 16%높다. 우리나라에서 노후된 아파트들이 도색을 새로 하고, 00캐슬, 00파크와 같은 국적 불명의 이름으로 고쳐 달자 수천만원이 올랐다는 얘기도 빈번하다.
주소가 지니는 상징적 가치 때문에 주소 개정을 둘러싼 논쟁도 전세계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 무엇을 기념하고 기념하지 않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사회 구성원들의 정치적, 종교적, 역사적 가치관이 깊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책은 결국 주소는 권력에 관한 문제로 정의한다.
권력이 이름을 짓고, 역사를 만들고, 누가 중요한지 중요하지 않은지, 왜 중요한지를 결정한다.
여전히 강남불패라는 말이 건재하고, 학군에 따라 도시의 아파트 가격이 결정되는 우리나라에서 주소를 통해 정체성과 정부 권력, 사회 구조를 설명하는 방식이 흥미롭다.
오희룡 기자 hu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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