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화 교수 |
조사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는 현재 극심한 분열과 갈등을 겪고 있다. 젊은이들은 나이 많은 사람을 '틀딱'이라고 부르면서 비하를 일삼고 있고, 나이 많은 사람들은 젊은이들을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라고 비난하고 있다. 워마드나 일베 등의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남성은 여성을, 또 여성은 남성을 혐오하고 비난하는 글들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좌파는 우파를 적폐세력으로 규정해서 이 세상에서 제거해야 할 악한 집단으로 여기고 있고, 우파는 좌파를 종북세력이라면서 여러 험담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경영진과 노조 간의 분열과 갈등은 더이상 언급할 필요도 없다. 심지어 신성하게 여겨졌었던 선생님과 학생들의 관계에서도 이러한 분열과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집단 간의 분열과 갈등은 어느 사회에서든지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는 것이 문제이며, 더욱 큰 문제는 BBC의 조사에서 보듯이 상대 집단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고 배격하며 나아가서는 상대 집단을 제거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상대 집단이 모두 사라지면 우리 집단이 원하는 좋은 세상이 올 것인가? 그렇지 않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철학적, 심리학적, 사회적 담론에서, 어떤 사회가 건전하고 생명력을 가진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 반대되는 집단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서로 수용하며 융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고 있다. 사서삼경 중에서 철학적으로 가장 심오하다고 일컫는 주역의 핵심사상 중 하나가 '음양설'이다. '음양설'에서는 우주의 삼라만상이 발생 되고 생명을 얻으며 변화되기 위해서는 서로 반대가 되는 '음'과 '양'이 모두 반드시 있어야 하고, 서로 의존하며 보완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더불어 서구의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철학이론 중 하나인 헤겔의 변증법에서도 비슷하게 말하고 있다. 변증법의 핵심개념은 '정반합(正反合)'이다. 정(正, 테제)과 반(反, 안티테제)는 서로 모순이 되는 관계이다. 어떤 진리에 도달하거나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과 '반'이라는 모순되는 관계가 반드시 필요하며, 이 둘이 서로 융화해서 '합(合, 진테제)에 이르게 되고 이것이 변화와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프로이드와 더불어 심층심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융(Jung)은 '집단무의식'이라는 개념을 말하면서 서로 특성이 반대가 되는 아니마(anima, 여성적 특성)와 아니무스(animus, 남성적 특성)가 있다고 했다. 원숙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반대 특성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는 아니마라는 여성적 특성을, 그리고 여자는 아니무스라고 하는 남성적 특성을 더욱 발달시켜서 두 특성이 한 사람의 심리 속에서 서로 융화되어야만 한다고 한다.
이렇듯 한 개인이나 사회가 건전하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내 자신이나 내가 속한 집단과 반대되는 개인이나 집단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것이며 그 개인이나 집단과 잘 융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만약 반대되는 개인이나 집단이 사라진다면 내 자신이나 내가 속한 집단도 쇠락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새가 힘차게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한쪽 날개만 있어서는 안 된다. 반대쪽 날개가 반드시 있어야만 하고 두 날개가 서로 조화롭게 움직여야 푸른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는 것이다.
이창화 대전을지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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