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고도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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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고도를 기다리며

  • 승인 2021-12-08 16:01
  • 신문게재 2021-12-09 18면
  • 이해미 기자이해미 기자
이해미
이해미 정치행정부 차장
시류를 앞서는 사람이 있고, 시류를 떠나 은둔하는 사람이 있다. 혹자는 시류를 타고 세상에 나오고 또 다른 혹자는 시류에 밀려 사라진다.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라서 시류에 편승하는 사람을 약았다고 표현하기도 하고, 은둔하는 사람을 못난 사람으로 매도하기도 한다. 각자에게 적당한 때라는 것이 있는 법인데, 누군가를 평가해 단정 짓는 것은 어느 때고 조심해야 할 일이다.

그런 면에서 역사는 다양한 각도에서 평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최근 영조와 정조가 등장하는 MBC 사극 '옷소매 붉은 끝동'을 재밌게 보고 있다. 역사가 스포일러라고 부를 만큼 영·정조 시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정조와 성덕임의 사랑 이야기뿐 아니라 비운의 왕실, 끝없이 왕권을 탐하는 정치세력, 그것을 지키고자 자신을 수련하는 인물의 성장사까지 영·정조 시대는 무한한 스토리텔링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KBS에서는 오랜만에 대하사극이 방영될 예정이다. 태종 이방원을 타이틀에 올린 작품인데 사극에서 자주 등장했던 이방원과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의 모습을 어떻게 그려냈을지 주말이 기다려진다.

조선시대 27명 왕을 면면히 살펴보면 시류는 매우 중요한 결정적 순간이었다. 모든 권력을 다 가진 왕도 시대의 흐름은 막을 수 없었던 것을 보면 사람이 아니라 시대가 택하는 인물과 사건이 있는 것 같다.



태조 이성계는 잦은 침략 속에 약해진 고려에 나타난 신흥 무인세력으로 등장해 조선을 건국했다. 뒤를 이어 태종 이방원은 낡은 고려의 뿌리를 거둬내고 500년 조선의 진정한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아버지 이성계 못지않게 시류가 밀어주는 바람을 탄 사람 같다.

누군가 혹 통일이 되면 어디를 가장 먼저 가고 싶으냐고 물은 적이 있다. 나는 주저 없이 '개성 선죽교'라고 말했다. 하여가와 단심가,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했던 이방원과 구시대를 지켜야 했던 정몽주의 역사가 묻힌 곳이다. 시 한 수를 주고받던 창과 방패의 싸움은 끝내 선죽교를 물들인 핏빛으로 막을 내렸지만 선죽교는 시류가 남긴 역사적 장소다.

영월 청령포에 갇힌 단종, 일장기가 내걸린 근정전에 서 있었을 순종은 시류에 밀린 비운의 왕이다. "시대를 잘 만났다면 더 큰 사람이었을 텐데"라고 했던 어른들의 말을 떠올려 보면 노력만큼이나 '때'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인사 시즌이고, 곧 대선과 지선이다. 또 하나의 역사가 될 지금, 우리에게는 어떤 시류가 오고 있는 것일까. 시류는 우리가 예상치 못한 순간 밀려오는 파도 같다.
이해미 정치행정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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