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회식문화가 발달했다. 대체적으로 회식은 나이가 많을수록, 관리자 마인드가 투철한 사람일수록 좋아한다. 왜 그럴까? 회식자리야말로 권력이 작동하고 사내 정치가 빛을 발하는 장소다. 위계질서가 강한 조직문화는 지시와 명령에 익숙하다. '까라면 까'라는 군대와 다를 바 없던 시절을 살아온 기성세대는 다분히 권위주의적이다. 윗사람은 아랫사람들 참석여부로 본인이 존중받고 있다는 걸 과시하고 아랫사람은 복종과 충성을 맹세한다. 조직 내 권력관계가 재확인되는 자리인 셈이다. 그러니 회식 불참은 상사의 권위에 도전하는 걸로 여겨져 알게 모르게 불이익이 따른다.
한국 사람들은 술을 정말 많이 마신다. 나는 체질적으로 술을 못한다. 술을 못 마시는 사람에게 회식은 지옥이나 마찬가지다. 지금은 술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많이 누그러졌지만 예전엔 술 못 먹는 직원은 회식자리에서 '죄인'이었다. 윗사람들은 공공연하게 술 잘하는 직원이 능력자라고 발언하며 치켜세우곤 했다. 당연히 술 못 먹는 사람은 무능력자로 낙인 찍혀 구석에 찌그러져 있는 신세가 된다. 이런 분위기에선 수월한 조직생활을 위해 억지로 술을 마셔야 하고 윗사람에게 달려가 무릎 꿇고 술 한 잔 따라 드리는 예의를 잊으면 안 된다. 오래 전, 한 후배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선배도 윗사람에게 아부도 하고 그래야 하는데 그런 걸 전혀 못해서…." 어느 설문 조사에서 연말 송년회 꼴불견 1위가 '술 강요형'이었다. 억지로 술을 먹이는 상사를 최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꼰대 기질이 강한 높은 양반일수록 회식을 업무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워라밸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이런 인식에 대해 질색한다. 재작년 봄 한 후배는 1박 2일로 회사 단합대회를 가야한다면서 분통을 터트렸다. 요즘은 회식도 잘 안하는 추세인데 금쪽같은 휴일에 단합대회가 웬 말이냔 얘기다. 후배는 시대 흐름을 못 따라가는 윗사람들의 후진성이 답답하다며 술 마실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속이 울렁거린다고 투덜거렸다.
코로나 재확산으로 일상 회복은 없던 일이 돼버렸다. 코로나 이후 평범한 일상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하루하루 전전긍긍하는 삶이 이어진다. 목욕탕 가서 뜨거운 물로 피로를 푸는 것도 소소한 재미였는데 이젠 옛말이다. 딱 하나 좋은 점도 있다. 회식이 없어졌다는 사실. 대신 사무실에서 피자나 치킨을 간단하게 시켜 먹고 끝내니까 더할 수 없이 좋다. 술 좋아하는 사람은 아쉽겠지만. 고도 성장기를 거친 한국인은 팀워크를 이유로 밤새도록 음주가무로 흥청대고 먼동이 틀 때 퇴근하는 것이야말로 회식의 완성이라고 여겼다. 역병이 사라지면 다시 또 퇴근 후 술판이 벌어질까? 올 연말도 일찌감치 퇴근해 발 닦고 후식으로 다디단 홍시 먹으면서 재밌는 TV 프로나 봐야겠다. 삼겹살은 휴일 집에서 점심으로! <지방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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