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운 국립국악원장이 K-국악 등 국악의 세계화와 대중화 등의 가능성을 설명하고 있다. 손도언 기자 k-55son@ |
▲먼저 국립국악원, 어떤 곳이고 어떤 역할을 하나.
"국립국악원은 정부 소속 기관이다. 임무는 국악의 원형을 보존하고 전승하는 것이다. 국악을 창조, 계승하고 현대적으로 발전시키는 역할도 한다. 또 국악의 가치 확산 및 생활화 등도 주요 임무다. 특히 우리나라 이미지를 세계에 알리는 것도 우리의 임무다. 서울 국립국악원 본원 외에 부산, 남도, 남원국악원의 분원도 있다. 정악단 등 4개의 연주단체가 고유의 성격에 맞게 연주하면 국민들과 소통한다."
▲국립국악원이 올해 70돌을 맞았다.
"짧은 세월은 아니다. 초기 열악했던 시기부터 국악원의 위상을 지켜온 국악인 선배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국립국악원은 1951년 피난지인 부산에서 개원했다. 전쟁 중인 나라가 우리의 전통음악을 버리지 않은 것이다. 당시 정부를 이끌었던 국가리더, 국회 등이 판단을 잘 해준 덕이다. 의미가 매우 크다. 이런 바탕에는 문화강국을 지향하는 국가 바람이 깔려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공연장을 찾아와 박수를 아낌없이 보냈던 국민, 그리고 문화적으로 성숙한 우리 모두가 있었기 때문에 국립국악원이 존재하고 있다."
▲'K-국악'이 세계 곳곳에서 조금씩 싹을 틔워가고 있다. K-국악, 현재 위치는.
"한국 전통음악, 그러니까 국악의 반대개념은 양악이다. 양악의 실체가 뭐냐. 서양의 나라가 한, 두 곳이 아니다. 독일,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스페인, 이태리 등 모든 서양국가의 음악을 양악이라고 한다. 그런데, 아시아 동쪽 끝 나라의 우리나라 음악과 비교하는 게 공정한 게임이겠나. 그래서 양악과 비교하는 것은 체급이 맞지 않은 경기와 같다. 양악과 비교해 보면 우리의 전통음악은 후발 음악이다. 그러나 늦게 출발했지만, 우리의 전통음악의 가속력은 엄청나다. BTS와 사물놀이 등 우리의 문화를 담고 있는 음악들이 지금 세계를 거의 휩쓸고 있다. 이런 배경에는 국민들의 '풍부한 감성'과 '섬세한 예술성' 등이 담겨 있다. 그래서 가속력이 붙은 것 같다. 예를 들면 세계적 열풍을 일으킨 '오징어 게임'을 보자. 이 속엔 묘한 흡입력이 있는데, 그게 바로 '조였다, 풀었다'를 반복하는 것이다. 세계인들이 이런 점에 몰입하는 것 같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전통음악도 '조였다, 풀었다'를 반복하다. 서민들의 산조 가락, 그리고 판소리에서 '울렸다, 웃겼다'를 반복하지 않나. 이렇게 인간의 감성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 같다. 언젠가는 국악이 서양음악을 추월한다. 우리문화가 갖고 있는 인간의 본능적인 감성, 또 음악의 가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김영운 국립국악원장(왼쪽)이 1시 30여분 동안 본보와 인터뷰 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국악의 미래는 밝다"고 강조했다. 손도언 기자 k-55son@ |
국악은 재미없다? 국악의 어떤 점이 재미없는가. 대중들이 우리 국악의 진면목을 못 봤기 때문이다. 물론, 연출가 등 국악계가 대중들의 관심을 끌어내지 못한 게 아쉽다. 그래서 국악의 다양한 측면을 보여주고, 들려줘야 한다. '고객 맞춤'이 있지 않나. 이런 부분들은 연출가 등의 몫으로 본다."
▲전통음악의 원형을 지켜야 할까, 아니면 다소 변질되더라도 현대적으로 변형시켜 대중화하는 노력이 좋나?
"수레가 두 바퀴로 꼭 움직여야 하나. 네 바퀴로 구르면 안 되는 것인가. 다양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들어주는 사람이 없는데, 뭐 하러 공연을 하나. 공연자로 나섰다면 들어줘야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고객에게 다양한 것을 공급해줘야 한다. 그러면서도 전통음악, 즉 국악의 골격을 갖춰야 한다. 창작곡을 쓰더라도, 창작곡 속에 국악의 맛이 느껴질 때 국악이라고 생각한다. 창작음악을 만들더라도, 전통적인 요소들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주는 것, 그것이 미래의 바람직한 국악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국악의 과도기다. 대중들은 100여년 동안 국악과 멀리 있던 사람이다. 대중들은 그동안 팝송 등 서양의 대중음악에 관심을 뒀다. 그래서 쓴 알약을 먹기 좋게 겉에 당분으로 싸야한다. 그러나 최종 목표는 당분을 빼내고, 쓴 알약을 먹일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국악인들의 노력이 필요할 때다."
▲옛 국악인들은 '국악인의 방송가 출연'을 곱게 보지 않는 것 같다. 국악인들의 방송가 출연, 어떻게 보나.
"KBS와 국악방송 등에서 일한 방송인이기도 하다. 국악인의 방송출연, 부정적으로 볼 일은 아니다. 국악뿐만 아니라 예술분야는 방송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 공연은 일부에 불과하다. 방송은 매우 중요한 영역이다. 국악인들이 방송 매체 등을 잘 활용해야한다. 그들(박애리, 송가인 등)이 국악의 호감도를 높인다. 대중들은 그들이 국악인 출신이었다는 것만으로 국악을 조금이나마 이해한다. 더 좋은 것은 국악인 출신인 송가인 씨 등이 공연 끝부분에 판소리 단가를 한번 불러주면 대중들은 어느순간 단가(판소리를 시작하기 전에 목을 풀 목적으로 부르는 짧은 소리)를 이해하고 좋아할 것이다. 국악인의 '대중 스타'가 필요하고 중요하다."
▲지역 곳곳에 '숨은 국악 역사'가 아직도 숨을 쉬고 있다.
"지역사회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그래서 본보의 '10년간의 취재기록'이 가치있는 중요한 역사라고 본다. 문제는 해당 지역사회가 이런 역사를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자치단체, 지역학계, 향토학자 등이 1차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해당 지역에서 깊이 있게 다뤄져야 한다. 그런 것들이 모아졌을 때 집대성할 수 있는 학술자료가 된다."
국립국악원 손도언 기자 k-55son@ |
"서쪽지역 음악이 발달해 왔다. 서쪽 지역은 농경사회, 즉 들판이 넓어서 경제적으로 자본을 축적했다. 당장 먹을 것도 없는데, 예술이 싹을 틔우겠는가. 그래서 경제적으로 여유 있던 서쪽지역 예술문화가 발달한 것으로 본다. 특히 충청도는 넓은 들판만 있던 게 아니다. 고대사회에서 보면 국제 무역 중심지다. 서산 당진이 대표적이다. 때문에 현금이 많았고, 예술가들도 이곳에서 공연했을 것이다. 중고제 판소리, 심씨 가문(심정순 가문)들이 말해주고 있지 않나. 그리고 근대사회로 오면서 충청도 음악문화 중심지가 남쪽으로 옮겨가는 면모를 보인다. '국악의 남진화'라고 볼 수 있다. 남도지역은 예술에 대한 관심도, 기질, 경제적인 토양, 예술문화 등이 갖춰진 곳이다. 충청도는 시기적으로 중심지가 남도지역으로 옮겨가긴 했지만, 우리나라 공연문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 흔적들을 본보가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학계가 본보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 같다."
▲판소리 큰 스승인 성우향 명창의 붓글씨로 쓴 '정응민 사설집'이 사라졌다. 국립국악원의 자료화 사업은 현재 어떤 상황인가.
"아쉬운 부분이다. 성우향 선생이 품었던 자료뿐만 아니라 국악계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들도 종적을 감춘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이라도 적극 찾아야 할 부분이다. 국립국악원은 없어지고 사라질 수 있는 국악과 관련된 자료 등을 수집하고 있다. 국립국악원에 맡겨주면 학술적으로 활용되고, 보존도 할 수 있고, 대중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 국립국악원은 기증자로부터 수집한 유물을 '국립국악원 미공개 소장품전:21인의 기증 컬렉션'을 국악박물관에서 진행 중이다. 또 2007년 국악아카이브를 신설해 기증 자료들을 축적하고 있다."
▲코로나 19로 모두가 힘들다. 국악인들도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
"국립국악원과 더불어민주당 임오경 국회의원(국악문화산업진흥법 발의)이 만나서 '국악산업 진흥정책 토론회'를 개최했다. 국악이 지속적으로 확산될 방안을 찾기 위해 이번 토론회를 마련한 것이다. 현재 국악문화산업진흥법은 국회에 제출돼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국립국악원도 객석 띄어 앉기 등으로 공연 횟수를 유지하고 있다. 무대에 서지 못하는 국악인과 신인 국악인들을 위해 온라인으로 제작해 대중들과 소통하고 있다. 특히 '제작노하우'까지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코로나가 하루빨리 종식돼 국악의 대중화가 앞당겨 지길 기대한다."
▲국악인들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보낸다면.
"국악의 미래는 어둡다고 보지 않는다.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가장 먼저 고향의 조상 묘를 정비한다고 한다. 이처럼 먹고 살만하고 삶의 여유가 생긴다면 전통음악 등 국가의 문화와 뿌리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세계속에서 우리나라 국격이 크게 성장했다. 그래서 나라와 국민들이 '뿌리 찾기'에 나설 시점으로 본다. 그래서 우리의 전통음악의 미래는 밝다. 국악이 세계에서 집중될 것이다. 지금 배우고 있는 국악 학도와 젊은 국악인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기회를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하고 싶다. 당장 힘들겠지만, 준비를 잘 했다면 반드시 기회가 올 것이다."
▲끝으로 한마디 한다면
"본보의 '10년간의 취재기록' 시리즈를 계속 봐 왔다. 전문성이 느껴져서 '혹시, 국악을 전공한 기자가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10년간의 취재기록은 지역사회의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 냈다. 특히 '관심'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발굴사업 등 국악계의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방향까지 제시했다. 한마디로 소명의식, 책임감 있게 기사를 작성해 줬다. 기사의 내용을 봤을 때, 언론인의 관심뿐만 아니라 학계가 학술자료로 쓸 만한 소스다. 국악계가 학술적인 자료로 쓸 기초자료라고 생각된다. 이 기사는 '토대화 작업, 자료화 작업'이라고 본다. 학계와 전문가들과 협력한다면 아마도 지역문화에 대해 상당히 큰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젊은 시절에 근했던 연구기관이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지금의 한국학중앙회연구원인데, 거기서 설립초기에 했던 작업이 바로 '학술 자료학' 토대 구축이다. 그게 있었기 때문에 한국학이 발전할 수 있었고, 오늘날 단계까지 올 수 있었다. 그럼 점에서 볼 때 본보의 시리즈 기사가 지역문화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제천=손도언 기자 k-55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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