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가 생각납니다. 신들이 사랑도 하고, 질투도 하고, 아이도 낳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미래 시대의 사람들인지라 신화 속 존재들처럼 현재 우리보다는 뛰어난 초능력이나 예지력을 지니기도 합니다. 그런데 거기 기독교의 메시야를 연상하게 하는 청년이 나옵니다. 이름조차 폴(신약 성경의 유명한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와서 민족을 구원하는 영도자가 될 거라는 믿음이 오래도록 이어져 왔고, 드디어 나타났습니다. 배경이 사막인 것도 신비한 종교적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데 기여합니다. 서구인의 상상과 이야기가 그리스 신화를 중심으로 하는 헬레니즘과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헤브라이즘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게 이 작품에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대형 스크린을 가득 채운 우주 공간과 사막은 말 그대로 스펙터클입니다. 손 안의 스크린으로까지 작아진 추세에 비추어 이 작품은 영화가 지닌 원초의 강력한 힘을 보여줍니다. 초창기 영화의 두 기원이라 할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1896)과 멜리에스의 '달세계 여행'(1902)을 생각합니다.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거나, 현실이 아닌 곳을 상상하는 영화. 이 작품은 후자에 속합니다. 그러나 거기도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이가 말했습니다. 영화란 사람이 사람을 찍어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그러니 영화는 결국 사람에 대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도저히 1960년대 영화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인 SF 영화의 명작 '2001 :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가 그렇듯 이 영화도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성찰하게 만듭니다. 거기 사람이 있고, 욕망하고, 투쟁합니다. 그리고 구원의 영웅을 고대합니다. 우리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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