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식 교수 |
사랑은 인류의 문명사가 시작된 이후 수많은 사상가와 철학자, 예술가와 종교인, 과학자와 정치인 등 분야를 막론하고 관심을 보여온 핵심 주제로 존재하였다. 현대성의 특징 중 하나는 사랑의 관심 주체가 소수의 전문가로부터 평범한 생활을 구가하는 일반 대중에게로 자연스럽게 확대 전이되었다는 점이다. 사랑이 일상생활의 중심으로 들어와서 평범한 이들의 삶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사랑은 제도나 관습으로 주어지는 외부적 요인이 아니라 스스로 의미 부여하고 선택하는 자신의 문제로 변신하고 있다. 오늘날 사랑은 기존의 관습과 윤리를 뛰어넘는 새로운 개념으로 재구성되고 재탄생되어 확산 중이다. 사랑은 우리 사회를 무섭게 변화시키는 근원이 된다.
사랑은 사람과 사물을 바라보는 찰라적이거나 지속적인 감정적 정신적 표현이며, 강하며 긍정적으로 경험된 말초적이며 감각적 느낌을 포함한다. 전통적으로 한국인에게 사랑은 좋아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말한다. 한국어의 사랑의 옛말은 ‘다솜’이다. 다솜은 따스하다와 비슷한 어원을 가져 따뜻한 온기를 함께 나누는 사람 사이의 친밀한 관계를 나타낸다. 사랑하다는 사랑의 진행형인바, 옛말은 ‘괴다’와 ‘고이다’이다. 원뜻은 ‘생각하다’ 인데 이 말은 사랑한다는 말과 같은 의미로 쓰인다.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이 따뜻하고 간절하며 끊임없이 생각이 난다면 이게 바로 사랑에 빠진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서양에서도 사랑은 일찍부터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철학의 주요 명제로 군림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사랑의 분류를 비교적 자세히 하고 있는데, stroge로 써서 부모 자식 간의 타고 난 사랑, eros는 열정과 육체적인 관계에 기반한 사랑, iudus 아이들끼리의 장난스러운 사랑이나 연인 사이의 가벼운 사랑, phila 친구 사이의 우정, pragma 인내심과 아량을 가진 성숙한 사랑. philautia 자기애이며 자기를 향한 사랑, agape 무조건적이며 이타적 사랑으로 나누고 있다. 현대 들어 과학자들은 인류학, 생물학, 심리학을 통하여 사랑에 관한 통찰을 추구하고 있는데, 생물학자들은 사랑을 결핍을 채우려는 동물적 욕구의 일종으로 본다.
뇌과학의 연구에 따르면 사랑에 빠질 때는, 뇌에서 행동과 생리를 조절하고 열정을 불러오며 의사소통수단으로 사용되는 페로몬(pheromone)이 분비되며, 신경전달 물질의 하나인 도파민(dopamine)이 분출되어 흥분을 일으키고, 세로토닌(serotonin)이 분비되어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고 주장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느끼는 열정과 행복감은 호르몬이 분비되어 쾌락 중추를 자극하고 심박수가 증가하면서 초래되는 당연한 결과라고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사랑에 빠지면 잠도 안 오고 흥분상태에 들어가는 것은 이러한 호르몬의 분비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때로는 기적처럼 찾아오는 사랑의 오묘하고도 불가해한 원인과 증상을 호르몬 분비로 설명하는 과학자들의 태도에 로맨틱한 사랑을 신봉하는 사랑꾼들은 마음이 상할 수도 있겠다. /신천식 한양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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