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 권불십년화무십일홍(權不十年花無十日紅)이란 표현이 낯설지 않다. 전미경이 부른 가요에 <장녹수>가 있다. 그런데 곡조가 자못 애처롭다.
= "가는 세월 바람 타고 흘러가는 저 구름아 수많은 사연 담아 가는 곳이 어드메냐 구중궁궐 처마 끝에 한 맺힌 매듭 엮어 눈물 강 건너서 높은 뜻 걸었더니 부귀도 영화도 구름인 양 간 곳 없고 어이타 녹수는 청산에 홀로 우는가" =
장녹수(張綠水)가 누구였던가? 폭군 연산군의 마음을 뒤흔들었던 여인이다. 장녹수는 흥청(興淸)이라는 기생 출신에서 일약 후궁의 지위에까지 올랐다. 연산군 시대의 신데렐라였던 셈이다.
서른 살 나이에도 고작 16살 꽃다운 여인으로 보였다는 동안(童顔)의 장녹수는 자식을 둔 후에도 춤과 노래를 배워 기생의 길로 나섰다. 궁중으로 뽑혀 들어와서는 연산군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아 단숨에 후궁이 되었다.
후궁이 된 장녹수는 연산군의 음탕한 삶과 비뚤어진 욕망을 부추기며 자신의 욕망을 채워나갔다. 그녀는 무수한 금은보화와 전택(田宅) 등을 하사받았고, 연산군의 총애를 발판 삼아 정치를 좌지우지하였다.
모든 상과 벌이 그녀의 입에서 나온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1506년 중종반정 후 장녹수는 반정 세력에 의해 제거 대상 1호로 떠올랐고, 참형으로 삶을 마감하였다. 참형(斬刑)은 목을 베어 죽임을 일컫는다.
비참한 최후다. 참형이든 자연사든 사람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수순에 의해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 그런데 죽음을 뜻하는 표현은 의외로 많다.
먼저, 서거(逝去)는 자신보다 높은 사람의 죽음을 높여 이르는 말인데 주로 대통령이나 국무총리의 경우에 사용된다. 붕어(崩御)는 과거 황제나 황후의 죽음을 높여 이르던 말이었다.
훙서(薨逝)는 왕, 왕비 또는 황태자, 황태자비의 죽음을 높여 이르는 말이고, 승하(昇遐)는 군주의 죽음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 선종(善終)은 천주교회에서 신자의 죽음을 이르는 말이며, 입적(入寂)은 불교에서 승려(비구, 비구니)의 죽음을 뜻한다.
소천(召天)은 하늘의 부름을 받음을 뜻하며 개신교에서 주로 사용한다. 열반(涅槃)은 불교에서 부처의 죽음을 이르며, 순국(殉國)은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사람들의 죽음을 높이는 뜻이다.
순교(殉敎)는 자신의 종교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의 죽음을 높여 부르는 말이고, 순직(殉職)은 자신의 직책을 다하다 목숨을 바친 사람들의 죽음인데 주로 공직에 근무하는 사람의 경우에 부합된다.
전사(戰死)는 전쟁에서 싸우다 죽음으로 군인의 명예와 연결된다. 장삼이사(張三李四)의 죽음은 통상 임종(臨終), 작고(作故), 별세(別世), 타계(他界), 사망(死亡)으로 통칭한다.
한때 나는 새도 떨어뜨렸던 막강 권력의 소유자가 바로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다. 역대 어느 대통령치고 공과(功過)가 없을 리 없다.
그렇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에겐 5·18 민주화 항쟁 희생자 유가족들의 처절한 상처와 아픔에 대한 진정한 사과는커녕 "내 재산은 예금 29만 원뿐"이라며 1997년 대법원에서 확정된 추징금 2205억 원에 대한 면피 어록으로도 국민적 반감이 여전히 상당한 인물이었다.
취재 목적으로 대전현충원을 자주 찾는다. 국립현충원에 잠들어야 마땅했을 '서거한' 전직 대통령이 그러나 '사망함'에 따라 조촐한 가족장으로 치러지게 되었다.
이런 현실에서 새삼 현직에 있을 적의 멸사봉공과 헌법의 철저 준수, 국가 보위,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대통령으로서의 성실한 직책 수행이라는 당위성을 발견하게 된다.
홍경석 / 작가·'초경서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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